박갑성 지음
예미 / 2025년 2월 / 280쪽 / 17,000원
▣ 저자 박갑성
수필가. 경남 남해에서 출생했다. 1992년에서 2024년까지 SK텔레콤에서 근무했다. 저서로는 『들꽃아 피어라』, 『풍경소리』 등이 있다.
▣ Short Summary
저자는 최근에 정년퇴직하기 전까지 한 기업에서 32년간 근무한 직장인이었다. 노트북이 든 백팩을 메고 지하철과 버스 손잡이에 몸을 의지하고 출근해 하루를 살아내는 보통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삭막한 도시의 일상 속에서도 변해가는 계절과 흘러가는 시간을 따뜻한 언어로 풀어낼 줄 아는 시인의 마음을 지닌 사람이다. 그의 글에서는 어린 시절 보고 자란 남해의 바다가 출렁거린다.
평범한 직장인이면서 시인인 저자는 정년퇴직을 앞두고 1년간의 하루하루를 기록한다. 새벽 출근길 지하철 창밖으로 바라다본 한강의 어스름한 불빛. 커피 한 잔을 들고 사무실 창가에 서면 바라보이던 빌딩 숲. 풀리지 않는 일을 붙잡고 새벽까지 씨름하던 나날들. 퇴근길에 동료들과 술 한 잔으로 하루의 피로를 달래던 시간. 이 모든 것이 그리운 풍경이 되어 그의 노트에 쌓여간다.
저자는 제주 애월에서 한달살이를 하면서 느린 걸음과 마음을 연습해 보려 했지만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쉽지 않았다. 아늑하고 정형화된 삶에서 벗어나는 일은 숨이 멎는 듯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이제 남아 있는 365일을 뚜벅뚜벅 걸어간다. 이 책은 그 시간에 대한 흔적이다.
지금껏 회사의 명함에 기대어 살아왔다고 고백하면서, 저자는 앞으로 맞닥뜨리게 될 낯선 날들에 대해 이렇게 다짐한다. “이제부터 조금은 느리고 서툴고 지난하겠지만, 다발에 묶이지 않고 한 송이 꽃으로 (…) 타인의 삶이 아닌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살아내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중년의 독백도 들꽃처럼 맑고 향기로워질 거라 믿습니다.”
이 책은 삶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걷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 각자의 인생길을 되돌아보게 하는 어떤 울림을 전해주는 깊은 사유들로 채워져 있다.
정년, 그 깊은 독백
박갑성 지음
예미 / 2025년 2월 / 280쪽 / 17,000원
여름
#365
얘들아, 삼백육십오 일 남았어.
아빠, 뭐가!
내년 6월 말이 정년퇴직이니까? 정확하게 삼백육십오 일 남았지.
아빠 정말 대단해. 고생 많았고 고마워. 일 년이 남았는데 아무런 느낌도 없어?
잘 모르겠어! 꿈 같기도 하고 바람 같기도 해.
가족과 강화도 마니산 단군길을 오르면서 나눈 대화의 일부분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물을 가르며 거친 폭풍 속을 지나온 것 같다. (2023. 07. 01)
#364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은 날씨, 커피 한 잔을 들고 사무실 창가에 앉았다.
오래된 풍경들 왠지 낯설게만 느껴진다.
비로소 커피 한 잔의 행복과 사유의 떨림 같은 것들을 느낀다.
행복은 별거 아니잖아. 지금까지 타인(他人)의 삶을 살았으면 됐다.
이제부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연습이 필요해. (2023. 07. 02)
#339
정년이 삼백삼십구 일 남았다.
휴일과 주말을 제외하면 글쎄 칠 개월쯤 남았을까?
정년 이후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자신과 오랫동안 마주하고 있어도 우울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타인의 성(城) 안에서 누려왔던 혜택과 익숙함을 과감하게 지울 수 있을까?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노트북이 들어 있는 백팩을 메고, 헤드폰으로 노래를 들으면서 책장을 넘기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이 보인다.
오래전에 알고 있던 젊은이는 오간 데 없고, 낯선 사람이 덩그러니 남았다.
풋풋했던 청춘을 생각하며 퇴근길 막#에서 모둠전에 한라봉 막걸리를 마셨다.
기분 좋은 밤, 여름날의 뜨거운 밤이 익는다. (2023. 07. 27)
#318
도시의 삶은 바쁘다. 왜 이렇게도 바쁜 것일까?
지하철 문이 열리고 마치 경주라도 하듯이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향해서 질풍노도와 같이 달린다.
덩달아 내 걸음도 빨라지고 시나브로 살겠다는 마음은 온데간데없다.
마음속에서 경쟁심과 이기심이 폭발한다. 질 수 없지.
한두 권의 책과 노트북이 들어 있는 백팩을 짊어지고
중년의 삶이 나뭇잎처럼 바람에 날린다.
뒤쫓아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에 밟히고 이리저리 찢기어 나간다.
지하철 안은 옷과 옷이 살과 살이 부딪치고,
인공과 자연의 냄새가 뒤섞인 채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모두 휴대전화에 코를 박고 있다. 제기랄, 저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어느 여름날의 오후. (2023. 08. 17)
가을
#286
가을의 초입,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난다.
아직 여름은 끝나지 않았다며 얄미운 계절이 이마와 등줄기, 그리고 땀구멍을 마구 쑤셔놓는다. 직장생활도 벌써 삼십 년이 되었다. 3~4킬로그램 되는 백팩을 짊어지고 쉼 없이 걸었다.
최근에 와서 초경량 노트북으로 바뀌면서 무게가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버겁다.
퇴근길 지하철 문이 열리자, 백 미터 경주라도 하듯이 질주하는 사람들.
에스컬레이터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제기랄, 저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싶다가도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진다.
이러다가 미치는 것은 아닐까? 미친 세상에 제정신으로 살아가는 게 신기하다.
이미 미쳐 있는 자신을 보지 못할 뿐이다. (2023. 09. 18)
#244
직장생활 내내 새벽 시간에 깨어 있었다.
첫 버스, 첫 지하철, 그리고 첫 출근. 언제나 처음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아왔다.
정년 이후에 새벽 시간은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까?
종잇장처럼 구겨진 새벽의 시간을 다림질하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기계 부속품처럼 정형화된 삶을 사느라,
새로움에 적응하지 못하고 타인의 삶을 기웃거리며 헤매는 것은 아닐까?
살아가며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 쉽지 않은 까닭은 무엇인가?
알면서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정년과 함께 살아온 날들의 초기화가 필요한 시간이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2023. 10. 30)
#221
한 해의 끝자락, 십일월 말이 되자 슬그머니 조직개편과 인사이동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관심사가 같은 방향으로 향해 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특이한 사례에 해당한다.
승진을 마음에 두고 일해본 적이 없다. 주변에 누가 승진하고 오가는지 관심이 없었다.
성공을 좇지 말고 오늘보다 내일이 진보한다면 성공은 뒤따라올 거라 믿었다.
그렇게 살아서 그런지 장기근속에 비해서 명함은 초라하지만,
온갖 태풍을 견뎌 정년까지 왔으니 이만하면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한 해가 간다. 오히려 한 해가 오고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의 위안과 위로를 보내자. (2023. 11. 22)
겨울
#209
책상에 놓여 있는 2024년도 다이어리와 달력을 받아 들고 보니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감당할 수 없는 공허함을 느낀다.
그동안 회사에서 누려왔던 혜택과 온실 속 편안함의 기억은 빨리 지워야겠다.
허허벌판에 외로이 피어 있는 들꽃과 같이, 비와 바람과 폭설을 견디며 꽃을 피우듯이,
중년의 향기로운 삶을 위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일이 쉬운 줄 알았는데,
아픔과 고독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이렇게 아플 줄을 몰랐다. (2023. 12. 04)
#175
어젯밤 눈이 내려 나뭇가지마다 하얀 외투를 걸쳤다.
아침 일찍 유튜브에서 영상을 시청했다.
노르웨이가 낳은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올레 불의 영상이었는데,
파리에서 콘서트를 열던 중 바이올린 현 하나가 끊어지는 돌발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나 불은 당황하지 않고 남은 연주를 훌륭하게 마쳤고 청중은 열광했다.
이를 두고 신학자 해리 에머슨 포스딕이 말했다.
현 하나가 끊어지면 나머지 세 현으로 연주를 마치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정말 멋진 삶의 통찰력이라 생각했다.
안정된 직장생활이 행복을 이루는 전제 조건이라는 사고방식을 나는 언제부터 가졌던 것일까?
정년이 다가오면서 매월 통장에 꼬박꼬박 입금되던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삶의 결핍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붙잡고 걱정하는 내가 우습다.
So, we'll go no more a roving. (그래, 이제 더 이상 헤매지 말자.)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없을까?
과거와 미래를 고민하지 않고 현재를 충실하게 사는 일이 중요하다. (2024. 01. 07)
#124
겨울과 봄의 여울목,
강 하나를 건너는 일도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의 축복과 사랑이 있어야 가능했다는 사실을
정년이 다 되어서야 알았다. (2024. 02. 27)
#122
업무 인계를 시작했다.
연간 계획, 이슈 사항, 사회 가치 과제, 비상연락망, 연동규격서, 검증망과 상용망 운영계획 등며칠간은 힘든 일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 같이했던 유관 부서와 협력사 담당자에게 업무 인계와 정년 소식을 전했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일이었는데, 왠지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때론 잊히는 것들이 슬플 때가 있다.
내일이 삼일절이라서 주말을 포함하면 삼 일간의 연휴다.
퇴근길에 버스를 탔는데, 머리가 아프고 현기증이 난다. 최근에 와서 심해진 것 같다.
이번 건강검진에 머리 CT나 찍어봐야겠다.
한강을 건너자, 밤을 밝힌 수많은 불빛이 꿈틀거린다.
제각기 다른 삶의 풍경이 한강에 봄을 깨운다. (2024. 02. 29)
봄ㆍ여름
#107
정년도 백여 일 남았다. 지난 시간을 생각하니 꿈을 꾼 것만 같다.
사무실과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죠! 축하합니다. 시간 되면 식사나 같이해요.
이럴 때마다 직장생활에서 보낸 시간이 어땠는지를 회상하곤 한다.
성공과 행복의 정의도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수 있다.
입사했을 때 가졌던 초심을 정년까지 잊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썼다.
비록 회사 명함은 초라하지만,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2024. 03. 15)
#97
누군가는 정년 후에도 계속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누려왔던 높은 연봉, 최고 수준의 복지와 안정적인 삶을 생각하면,
내려놓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하지만 언젠가는 직장생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면
이쯤에서 쉼표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나이가 들수록 내려놓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다.
봄비가 내린다. 연초록 같은 봄을 만지작거린다.
지금부터 가난해지는 연습을 하자.
SNS를 제한하고, 현재를 살며, 현명하게 소비하자.
그리고 비교하는 삶을 내려놓자. (2024. 03. 25)
#96
무수한 생명이 잠에서 깨어나는 새벽녘,
우산을 받쳐 들고 헤드폰으로 이은미의 ‘알바트로스’ 노래를 흥얼거리며,
국가인권위원회 앞 버스정류장에 서 있다.
목적지를 향해 분주히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버스가 새벽을 밀고 간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인데도 정년을 생각하면, 벌거벗은 감정을 느낀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런 풍경도 생각나고 가끔은 그리울 것이다.
익숙했던 것과의 결별이 다가오면서 공허한 마음에 바람이 불고,
가시나무에 찔린 것처럼 심한 통증을 느낀다.
비워지는 시간이 이렇게도 시리고 공허할 줄을 몰랐다.
비워지고, 잊혀지는 시간을 사랑하자.
그토록 애간장을 태우던 캄캄한 밤들을 사랑하자.
가벼운 존재의 연민 같은 것들을 사랑하자.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시간을 사랑하자.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는 너의 들숨과 날숨을 사랑하자. (2024. 03. 26)
#53
바쁜 하루였다.
자동차 엔진오일을 교체하고, 마이너스 통장 연장 신청을 하고, 머리를 깎았다.
그리고 오후에는 회사에서 가져온 상자를 열고, 책을 정리했다.
그리고 상자 안에 들어 있는 명패를 보면서 많은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했다.
직장생활 삼십 년 끝에 남은 것은 책 한 박스, 명패 두 개, 여러 개의 상장과 상패.
이 또한 정년퇴직하고 나면 깃털처럼 가벼워서 시 한 줄 한 문장만 못할 것이다.
정년퇴직 위로 휴가를 보내고 있는데, 업무 때문에 회사와 정부에서 전화가 걸려 온다.
업무 인계가 끝났음에도 전화가 걸려 오는 것은 오랜 친분과 전문성,
그리고 지난 시간의 기록 때문이라 생각된다. (2024. 05. 08)
#36
달포쯤 남은 정년퇴직, 후배들이 마련해 준 자리라서 늦지 않으려고 서둘러 집을 나왔다.
안국역에서 가까운 ‘인사동촌’에서 한정식을 먹으면서 낡고 오래된 추억을 흔들고 있다.
내 모습을 형상화한 밀랍인형을 선물로 준다. 후배들의 따뜻한 마음이 고맙다.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선물을 받고 식사 자리가 늘어나면서 정년퇴직을 실감하게 된다.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더 이상 욕심내지 않는 것, 그쳐야 할 때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만하면 됐다. (2024. 05. 25)
#32
하루 종일 국민연금, 고용보험, 퇴직연금, 지역 건강보험 정보를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설명이 어렵고,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회사라는 우산 속에서 편안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파리바게뜨와 커피집을 방문할 때마다
가격표를 보면서 손길이 멈칫멈칫하는 내가 우습다. (2024. 05. 29)
#17
유월이면 정년퇴직이라서 은행에 다녀왔다.
연금 운영 방법을 설명하는데, 금융은 여전히 어렵고 신세계처럼 느껴진다.
늦은 오후 카톡으로 문자를 받았다.
회사에서 정년퇴직자 대상으로 ‘Senior Expert’ 제도 공지문이 회사 게시판에 떴다는 것이다.많은 동료와 리더가 지원하라고 권유했지만,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일이라서 이쯤에서 쉬기로 했다.
실력도 부족하지만, 연봉만큼의 성과를 낼 자신이 없다. (2024. 06. 13)
#6
장기간 정년퇴직 휴가를 끝내고, 아침 일찍 출근했다.
회사에서 보내는 마지막 주가 될 것 같다.
팀에서 마련해 준 정년퇴직 송별식 모임에 참석해서
특별히 제작해 건네주는 추억의 앨범과 선물을 받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행복은 슬픔 속에서도 아름답게 빛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감사하다. (2024. 06. 24)
#5
회사에서 받는 마지막 월급이다. 그래서 더 애틋하다.
퇴직 후 매월 들어오던 월급이 들어오지 않으면 어떤 느낌일까?
비워지는 곳간을 시간은 잔인하리만큼 억누르며 불확실성은 그만큼 숨통을 조여올 것이다.
어제 정년퇴직 송별식으로 먹었던 술 때문인지, 하루 종일 헤매고 있다.
사십 분 일찍 퇴근했다. 거리에 많은 사람과 자동차가 강물처럼 흘러간다.
이제부터 삶의 역습을 경계해야 한다.
나의 경쟁자는 오직 나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2024. 06. 25)
#4
재택근무를 했다. 정년퇴직 축하 메일과 문자를 받고 답글을 쓰면서 하루를 보냈다.
저녁에는 직장 후배와 용산에서 저녁식사 약속이 있었고, 오리불고기로 소주를 마셨다.
정년퇴직을 화두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우리들의 인생에 정답은 없다. 작은 일 큰 일 구분하지 말고 그냥 살아내는 것이다.
늦은 밤바람이 시원하다. 용리단길을 꽉 채운 사람들,
벤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연인들을 보면서, 부러움과 시샘을 느낀다.
내 청춘은 어떠했던가?
그때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에 와서 후회와 아쉬움으로 남는다.
부러워하지 말자. 이제부터 긴 여행을 시작하는 자유인이 아니던가. (2024. 06. 26)
#3
직장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사원증, 개인 법인카드, 노트북을 반납하고 나니
허허벌판에 던져진 벌거숭이처럼 남는 게 아무것도 없다.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공허하다.
이제부터 아마추어 같은 삶은 시작될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 사직서를 늘 가슴속에 품고 다녔던 시간을 생각한다.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고, 이슈를 붙들고 불면의 밤을 보냈던 시간이 많았다. 이제는 모든 것들이 감사함으로 다가온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라서 고맙다.
정년퇴임식을 가졌다. 퇴임식 인사말은 한상경 시인의 ‘나의 꽃’으로 갈음했다.
“네가 나의 꽃인 것은 이 세상 다른 꽃보다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네가 나의 꽃인 것은 이 세상 다른 꽃보다 향기로워서가 아니다
네가 나의 꽃인 것은 내 가슴 속에 이미 피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함께했던 직장동료와 정부 그리고 협력사분들께 시 한 편과 감사의 글을 남겼다.
(2024. 06. 27)
◆ 정년퇴직 감사 편지
안녕하세요. 박갑성입니다.
며칠 후면(6. 28) 로그아웃되는 직장생활, 새로움에 대한 로그인의 떨림으로 정년퇴직 인사 올립니다. 본사 발령을 받고 코어솔루션팀에서 열여덟 해를 보냈습니다. 섬과 섬 사이, 닿고 싶어도 닿을 수 없었던 팽팽한 긴장감으로 보냈던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분인(分人)으로 살면서 여백 위에 뒤섞인 우리는 우리가 누군지 모르고 모른다는 사실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너무나도 힘들었던 중력의 시간 위에서 마음 졸여도 끙끙거려도 미워해도 그들은 어차피 직장생활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일 뿐이라는 사실만으로 진심을 담아내지 못했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늘 비교하고 숫자의 크기에 몰빵했던 시간도 많았습니다. 한쪽에 숨어 자신을 합리화하며 다른 쪽을 외면했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상처를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회사의 명함에 기대어 얄팍한 변화와 실력, 부록(附錄)으로 여기까지 왔음을 이제야 부끄럽게 고백해야겠습니다.
이제부터 조금은 느리고 서툴고 지난(至難)하겠지만, 다발에 묶이지 않고 한 송이 꽃으로 고고하게 서는, 회사의 명함이 아닌 자신의 명함으로, 타인의 삶이 아닌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살아내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중년의 독백도 들꽃처럼 맑고 향기로워질 거라 믿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마지막으로 SK텔레콤 동료 선후배님과 SMS, 재난문자 서비스 개선을 위해서 오랜 시간 협업했던 정부, 협력사분들께 감사드리며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진심으로 기원하고 응원합니다.
2024. 6. 27. 박갑성 배상(拜上)
#박갑성 #정년퇴직 #삶의흔적 #직장인의일상 #중년의독백 #들꽃 #하루하루기록 #제주한달살이 #삶의변화 #따뜻한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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