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모던 뽀이' 박태원과 천변풍경
월탄 박종화는 그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지금으로부터 7, 8년 전 소화 7, 8년경 조선문단에는 기괴한 실로 기기괴괴한 '갑바'(河 童) 머리에 너부죽한 이마를 앨 써 좁히고 시커먼 각테 안경에 탈모주의로 해괴하게도 거 리를 횡보하는… 이른바 최첨단(?)을 걷는 문학의 청년사도가 한 사람 나타났다."
- 박종화, 「박문」 제6호, 1939. 3
'갑바' 머리는 지금 말하는 바가지 머리 모양을 닮았다. 당시에는 그것이 일본에서 건너온 최신식 머리 모양이었다 하니 박태원은 이처럼 새로운 유행을 몰고 다닐만큼 당대 최신식의 모던 보이였다.
당시 쓰여진 작가 인상기에도 박태원의 독특한 성격이 유달리 강조되어 있다.
"그 모습이 괴상한 정도로 그 성격도 괴벽이 농후한 듯하다. 어덴지 젊음에 당치 않을만 큼 대인연(大人然) 말없이 뽐내는 빛이 보이는 것은 도회에서 자라나 지나치게 세련된 관 계도 있겠지만 너무 조숙한 탓인 듯하다. … 어린아이가 실크햇트에 연미복을 입고, 스틱 을 집고 시침이를 딱 떼고 섰는 광경… 그러한 인상이 농후하다."
- 이석훈, 「중앙」, 1936. 5
독특한 스타일만큼이나 글쓰는 방법 또한 특이해서 당시 세인들의 가십거리로 등장하곤 했다. 박태원은 항상 팔에 대학노트를 들고 다니면서 그곳에 도시의 풍물, 군중의 모습을 적어 넣었고, 상상력만으로는 소설이 되지 않아 실물을 눈앞에 보기 위해 도심지를 오가곤 했다. 이러한 창작법은 『소설가 구보(仇甫)씨의 일일』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작품은 작가의 분신인 소설가 구보가 대학노트 한 권을 들고 정오에 집을 나와 서울 거리를 배회하다 새벽 2시에 집으로 귀가하는 하루의 일과를 담고 있다. 『소설가 구보(仇甫)씨의 일일』은 1930년대 경성 도심의 지도를 재구할 수 있을 정도로 서울 거리가 세심하게 묘사되어 있다.
『천변풍경』 역시 1930년대 청계천변을 그대로 모사(模寫)하고 있다. 『천변풍경』의 배경이 된 청계천 주변은 실제 박태원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며, 이 작품에 나오는 한약국집은 그의 부친이 경영하던 공애당약국(共愛堂藥局)을 모델로 한 것이었다. 『천변풍경』은 순수 경알이(서울)파 문인인 박태원이 '조선말을 수집하는 어학자로 앉아서도 경알이말의 노다지를 발견했다고 찬탄'할 만한 언어의 잔치를 벌인 것이며, 천변에 사는 이름 없는 평범한 소시민들의 도시적이며 현대적인 일상을 그린 작품인 것이다.
중인 집안 출신의 서울 토박이
박태원 문학의 특징은 역시 그의 출신이나 경험과 깊은 관련을 맺는다. 박태원은 1909년 박용환의 4남 2녀 중 차남으로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부친은 당시 약국을 경영하고 있었고, 숙부는 병원을 개업하고 있었던 점으로 보아 박태원은 중류 이상의 집안에서 자랐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아홉 살까지 집안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1918년에 보통학교를 입학하여 4학년을 수료하고 다시 경성제일고보에 입학하여 1929년에 졸업했다. 이듬해 동경으로 건너가 법정대학 예과에 입학, 본과는 채 일 년도 채우지 못하고 중퇴했다. 학교 성적은 대개 중간 정도를 유지했는데, 학교 성적엔 별로 관심이 없고 문학창작에 더 관심이 많았다.
학적부의 기록에는 품행이 "쾌활하지만 경솔함" 혹은 "명민 쾌활함"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외면적으로는 쾌활하고 재기 넘치는 유머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내부에서는 자주 고독을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때로는 자신을 천재라고 단정하고 천재에게는 정규의 학교교육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고 휴학한 적이 있기도 했다. 실제로 1927년 학교를 휴학하고 세계의 명작들을 보다 폭넓게 읽으면서 숙부와 고모의 주선으로 만난 춘원과 백화에게 본격적인 문학수업을 받기 시작한다. 박태원이 최초로 발표한 글은 1923년 「동명」지에 실린 「달맞이」라는 글이고, 정식으로 데뷔한 것은 1926년 3월 「조선문단」에 발표된 「누님」이라는 시를 통해서였다.
박태원은 1928년 스무살의 나이에 갑자기 부친을 잃게 된다. 그 후 다시 학교에 복학하여 졸업하고, 이후 도일하기 전까지 약 일년간 박태원(泊太苑) 혹은 몽보(夢甫)라는 필명으로 소설, 시, 평론, 번역 등을 발표한다. 박태원은 일년간 창작에 몰두했으나 한계를 깨닫고 보다 넓은 문학의 바다를 위해서 도일, 동경으로 건너간다. 이 당시 박태원은 영문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조이스나 프루스트 류의 의식의 흐름 수법을 처음으로 시도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는 서구화의 물결이 넘치는 동경에서 최신 예술양식, 영화나 미술, 음악 등 예술 전반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서울로 돌아온 박태원은 본격적인 소설 창작에 몰두하면서, 주로 신변 체험적인 사소설이나 심리묘사에 주력한 일련의 내성소설을 발표하고 실험적인 기법을 적극 실천한다. 1933년에는 '구인회'에 가입하여 이태준, 이상과 더불어 활발한 활동을 하는데, 기존 작가들의 진부한 문학태도를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새로운 문학을 지향하기 시작한다. 특히 박태원은 이상과 아주 친하여 항상 붙어 다니며 유머와 독설로 세상을 풍자하였다. 박태원은 누구보다도 이상의 사생활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었으며 그의 삶을 이해해 주었다. 박태원은 이상을 모델로 한 「애욕」, 「제비」, 「염천」 등의 소설을 발표하고 이상은 박태원의 소설에 하웅이라는 필명으로 삽화를 그려주기도 했다. 박태원이나 이상이 모더니스트로서 문학적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조선중앙일보」 문예부장이었던 이태준의 후원과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감도」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대한 독자와 평론가들의 항이와 비판이 거셌는데도 작품을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은 이태준의 배려 때문이다. 박태원의 월북에는 이태준의 영향이 컸을 것임을 알 수 있다.
박태원은 후에 경제적인 어려움과 시대의 황폐함 속에서 모더니스트 문학의 빛을 잃고 대다수의 문인들과 함께 대동아공영권의 터무니없는 제국주의 선전에 동조하기도 한다. 이 시기의 박태원 문학은 통속소설, 중국소설 번역 등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해방 직후에는 『조선독립순국열사전』등의 민중적 작품을 쓰고, 좌익계열의 문학단체인 '조선문학건설본부'의 집행위원으로 선정되기도 한다. 1945년부터 다른 문인들이 월북하기 시작하지만 박태원은 그대로 서울에 남아 있다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인민군을 따라 서울에 온 이태준, 안회남 등과 함께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학에서 이데올로기 배제를 외쳤던 모더니스트가 월북까지 하게 된 정확한 원인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것은 아마도 그가 중인 출신의 서울 토박이로 어떤 신념보다 주변 정세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인 까닭이었을 것이다.
월북 후 박태원은 「조국의 깃발」(1952), 「리순신 장군」(1952) 등을 썼다. 그러나 1956년 남로당 계열로 몰려 숙청되고 한때 시골 소학교 교장으로 생활하기도 한다. 이 시기에 박태원은 갑오농민전쟁의 역사적 사건을 소설화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1960년 작가로 복귀한 뒤 이를 토대로 1963년에서 1964년에 걸쳐 갑오농민전쟁의 전편이 되는 『계명산천은 밝았느냐』를 발표한다. 그러나 1965년 망막염으로 실명하게 되고, 1975년에는 고혈압이 악화되어 전신불수에 이른다. 하지만 오늘날 북한 최고의 역사소설로 평가되는 『갑오농민전쟁』은 1977년부터 박태원이 사망한 후인 1986년에 이르러 완성, 출간되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청계천변 빨래터에는 아낙네들이 모여 수다가 한창이고 건너편 이발소에선 재봉이가 마을의 소식을 물어와 정보 교환이 쉴 새 없다. 그 이야기 속에는 마을 누구가 첩살림을 시작했고, 누구가 바람을 피웠으며, 누구는 시골서 올라왔고, 누구는 시골로 낙향했다. 천변 사람들의 천태만상 인생살이에는 기막힌 이야기도 참으로 많은데….
박태원은 문자 그대로 '천변'의 풍경화를 그려보이듯 1930년대 서울 변두리 지역의 도시적 삶의 일상성을 샅샅이 그려낸다. 최재서나 임화는 박태원의 기법을 영화의 '카메라 아이'라 불렀다. 박태원은 일찍이 동경에서 유학하면서 영화에 눈을 떴고 실제로 영화적인 기법을 소설에 이용하고자 많이 노력했다.
『천변풍경』은 특히 몽타주 수법을 많이 활용했는데, 몽타주란 쇼트(short)와 컷(cut)으로 나누어지는 장면과 장면을 연결하는 것과 관련된 수법이다. 『천변풍경』이 50개의 절(折)로 나뉘어진 것도 영화의 컷과 유사하다. 『천변풍경』에는 특히 공간 몽타주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천변풍경』은 특정한 주인공이 없으며, 따라서 한 사람에게 초점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 마치 카메라가 천변을 따라 움직이며 갖가지 형태의 삶을 살고 있는 인물군의 생활상을 골고루 그리고 있는 것 같다. 신전집 주인, 포목전집 주인, 한약국집 주인, 그 심부름꾼 창수, 드난을 살고 있는 귀돌어멈, 행랑살이 하는 만돌어멈, 한약국집 아들 부부, 평화카페 여급인 기미꼬, 하나꼬, 금순이, 민주사와 관철댁, 이쁜이 모녀, 점룡이 모자, 순동이 재봉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천변풍경』은 얼핏 보면 여러 에피소드들이 질서없이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발소와 빨래터를 중심으로 공간의 구도에 따라 카메라가 움직이는 것처럼 구성된 것이다. 이 때 동일한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을 나란히 병치시킴으로써 동시성의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서 시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되는데, 시간을 무의미하게 여기는 시간의식은 대도시의 생활과 관련이 있다. 대도시는 본질적인 변화가 없는데도 일상적인 사건이 소모적으로 반복해서 일어나며 사람들은 집단의 부속물로서 이리저리 떠다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천변풍경』은 '선명하고 다각적인 도회 묘사'를 이루어냈다고 평가되는 것이다.
『천변풍경』에 나오는 등장인물 재봉이의 시선이야말로 『천변풍경』의 카메라 아이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재봉이는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이발소의 유리창 너머를 바라본다. 재봉이가 돈도 얼마 받지 못하는 이발소를 그만두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이발소 창 너머로 '천변' 사람들을 관찰하는 재미를 포기하지 못해서이다. 제2절 '이발소 소년'은 이발소 소년인 재봉이의 눈에 비친 인물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첩실을 두고 있는 민주사가 이발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나이와 작은집 살림을 걱정하는 순간을 묘사한 데 이어, 소년의 눈(거울)에 비친 뭇인물들이 차례로 지나간다. 이발소 창 앞을 점잖게 지나가는 중년의 신사, 포목집 주인의 우스꽝스럽고 가식적인 모습을 사라질 때까지 보고 나서, 천변 넘어 맞은편 카페로 눈을 옮겨 카페 여급 하나꼬, 기미꼬를 소개하는 식이다. 소년의 눈은 이어서 한약국집 아들 내외→주인 영감→돌석이→귀돌 어멈→곰보 미장이 누이→신전집 작은아들 순으로 이어진다. 주인공이 없는 이 소설에서 재봉이가 그래도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데에는 이러한 '바라봄'의 역할이 크다.
『천변풍경』은 일정한 주인공이나 중심서사 없이 천변에 사는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정한 플롯이나 서사가 없는 비유기적 구성은 기존의 소설양식들을 비웃는다. 안회남은 박태원의 소설을 가리켜 "기교의 세계가 퍽도 윤택한 대신 사상의 세계는 너무도 수척하지 않은가 한다."(「작가 박태원론」, 『문장』,1937. 1)고 지적하였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지금까지 박태원에 대한 평가는 사상성의 결핍과 기교의 성과, 이 두 가지로 요약되어 왔다.
「천변풍경」은 임화나 박종화, 최재서와 같은 리얼리스트들로부터도 '조선 문단의 가장 큰 수확의 하나'요, '순수한 경알이 문학'이자, '리얼리즘의 확대'라고 칭찬을 받았다. 하지만 임화와 최재서는 또한 각각 이 작품을 비판하여 '전형의 제시도 없고 구성도 미약하며, 모자이크적 수법으로 만들어진 단편의 집합'(「세태소설론」, 『문학의 논리』,1940), '좁은 천변의 배후를 이끌어 가는 사회의 힘, 작가의식의 부족'(「리얼리즘의 심화와 확대」, 『문학과 지성』,1938)이라고 폄하하고 있다. 반면, 문학에 있어 이른바 순수성과 기교를 중시했던 김환태는 박태원이 유행사조를 따르지 않고 관조적 감상과 세태적인 관찰과 칼날 같은 감각을 형상화한 점을 들어 이를 의연한 문학정신의 발로라고 높이 평가했다(「순수 시비」, 『문장』, 1939. 11).
흔히 박태원을 논할 때 모더니스트의 면모를 말하는데 모더니즘이 무엇을 의미하며, 어떤 경향의 문학인가는 워낙 광범하고 애매하기도 해서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박태원이나 이상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모더니스트라 분류되기도 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에 있어서 모더니즘 문학이라는 것은 시에 있어 낭만주의와 소설에 있어 리얼리즘과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박태원이 모더니스트에서 프로 문학가로 변신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천변풍경』 이후의 작품에 대해서는 논의가 잘 되어 있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박태원의 한계라기보다는 한국문학이 처한 입장에서 비롯된 한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박태원이 모더니즘을 실험하고 있을 때는 일제의 탄압이 더욱 심해지고 있어 다만 문학만의 문제로 실험하고 있기에는 너무나 다급한 상황이라는 점, 역사의식을 갖지 못한 기교주의 문학이란 얼마나 허무한 문학행위인가에 대한 자각, 그리고 일제 치하에서 했던 그의 친일행위가 얼마나 조국에 대해 부끄러운 행위인가에 대한 자책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개인의 재능이 아무리 탁월해도 정치적 조직에 걸맞지 않을 때는 여지없이 희생된 예를 역사상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해방 후의 한국의 분단상황은 이러한 경우에 속한다. 박태원을 비롯한 월북 문인 대다수나 이남에 남아서도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하지 못한 문인들에게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박종화 「신간평총―「천변풍경」을 읽고」, 「박문」 6호, 1939. 3
임 화 「신간평 박태원 「천변풍경」 평」, 「조선일보」, 1939. 2. 17
「세태소설론」, 『문학사의 논리』, 학예사, 1940
최재서 「리야리즘의 확대와 심화 ―「천변풍경」과 「날개」에 관하야」, 『문학과 지성』, 인문 사, 1938
강진호·류보선·이선미·정현숙 편 『박태원 소설연구』, 깊은샘, 1995
김교봉 「박태원 「천변풍경」연구」
이선영편 『1930년대 민족문학의 인식』, 한길사, 1990
김상태 「박태원론―열려진 언어속에 담긴 내면풍경」, 『현대문학』, 1990. 4
김용희 「「천변풍경」에 나타난 소시민들의 리얼리즘」, 『이화어문논집』제5집, 1982
김윤식 「고현학의 방법론 ―박태원을 중심으로」, 『한국문학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민음사, 1989
신재성 「박태원 「천변풍경」론 ―장식적 현대와 언어의 축제」, 『장편소설로 보는 새로운 민족문 학사』, 열음사, 1993
안숙원 「박태원의 소설연구 ―도립(倒立)의 시학」, 서강대 박사논문, 1993
윤정헌 『박태원 소설연구』, 형설출판사, 1994
이선미 「구인회 소설가들과 모더니즘의 문제 ―이태준과 박태원의 경우」
상허문학회 편 『근대문학과 구인회』, 깊은샘, 1996
이재선 「1930년대의 도시소설 ―「천변풍경」에 나타난 박태원의 작품세계」, 『문학사상』, 1988. 8 별책부록
정덕준 「박태원 소설에서의 도시적 삶」
서종택·정덕준 편 『한국현대소설연구』, 새문사, 1990
정현숙 『박태원문학연구』, 국학자료원, 1994
최혜실 「모더니즘소설에 나타나는 공간성―박태원의 「천변풍경」」
구인환 외 편 『한국현대장편소설연구』, 삼지원, 1990
한상규 「박태원 「천변풍경」에 나타난 창작기술의 양상」, 한국현대문학 연구회, 『한국문학과 모 더니즘』, 한양출판사, 1994
1909(1세) 음력 12월 7일(양력 1월 6일) 경성부 다옥정(茶屋町, 통칭 수중박골, 지금의 수송동)에서 박용환과 남양 홍씨의 4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처음 이름은 등 한쪽에 커다란 점 이 있다하여 점성(點星)이었으나 1918년 8월 14일 태원(泰遠)으로 개명했다.1916(8세) 큰할아버지 박규병으로부터 『천자문』과 『통감』 등 한문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1918(10세) 『춘향전』, 『심청전』, 『소대성전』등을 탐독하고 고소설을 섭렵했다.
경성사범부속보통학교 입학.
1922(14세) 경성사범부속보통학교(4년제) 졸업. 경성제일공립보통학교 입학.
1923(15세) 「동명」지(4월호)의 소년칼럼난에 「달맞이」 이란 작문이 뽑혔다.
1926(18세) 3월 「조선문단」에 시 「누님」이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데뷔한다. 필명으로 泊太遠을 사용하면서 「동아일보」, 「신생」 등에 시, 평론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27(19세) 경성제일고보 휴학. 문학 활동에만 전념하면서 양의사인 숙부 박용남과 여학교 교사인 고 모 박용일의 주선으로 춘원 이광수와 백화 양건식에게 문학 지도를 받았다. 1928(20세) 3월 15일 아버지 사망, 큰형 진원이 가업인 약국을 물려받았다. 제일고보 복학. 1929(21세) 경성제일고보 졸업. 泊太苑, 夢甫라는 필명으로 소설, 시, 평론, 번역 등을 발표하였다.1930(22세) 동경 법정대학 예과 입학.
영화, 미술, 음악 등 서양예술 전반과 신심리주의 문학에 경도. 동경 유학생활에 관한 것 은 소설 「반년간」에 잘 반영되어 있다.
「적멸」을 「동아일보」에 연재. 삽화를 자신이 직접 그렸다.
1933(25세) 조용만의 추천으로 이상과 함께 '구인회'에 가입, 활동했다. 「반년간」을 「동아일보」 에 발표.
1934(26세) 경주 김씨 김중하(한약국 경영)의 무남독녀 김정애와 결혼한다. 김정애는 숙명여고를 수 석으로 졸업하고 보통학교 교원으로 재직 중이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딱한 사람들」, 「애욕」 등을 발표. '구인회' 주최 문학공개강좌에서 '언어와 문장'을 강연했 다.
1936(28세) 맏딸 설영 출생(이 날은 눈이 제법 오고 매서웁게 춥던 날인데 어버이가 되는 시간에 다 방 낙랑에서 시인 이상과 차를 마시고 있었다고 「결혼 5년의 감상」에서 술회하였다). 「조광」에 「천변풍경」을 연재하였다.
1937(29세) 둘째달 소영이 출생했다. 『조광』에 「속천변풍경」을 연재한다.
1938(30세) 단편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을 출간했다.
1939(31세) 맏아들 일영 출생. 『박태원 단편집』과 중국소설 변역집 『지나 소설집』을 출간했다. 1941(33세) 「매일신보」에 장편소설 「여인성장」을 연재하는 한편, 번역소설 「신역 삼국지」를 「신세대」에 연재했다.
1942(34세) 둘째아들 재영 출생. 「조광」에 중국 소설 「수호지」를 3년에 걸쳐 연재하였다. 장편 『여인성장』, 『국군의 어머니』, 『아름다운 봄』을 출간하였다.
1945(37세) '조선문학건설본부' 소설부 중앙위원회 조직 임원으로 선정되었다.
1946(38세) '조선문학가동맹' 집행위원으로 선정되었다. 『조선순국열사전』을 출간했다.
1947(39세) 셋째딸 은영 출생. 장편소설 『홍길동전』을 출간했다.
1948(40세) 단편집 『성탄제』, 장편소설 『금은탑』, 『중국소설선1』, 『중국소설선2』를 출간 했다.
1949(41세) 후에 『갑오농민전쟁』에 모태가 되는 「군상」을 「조선일보」에 연재하다가 도중하차 했다.
1950(42세) 전쟁 중에 서울에 온 이태준, 안회남, 오장환을 따라 월북하였고, 한국전쟁 중 종군기자 로 활동하였다. 일본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해방 직후 최고의 미술운동이론가였던 남동 생 문원, 숙명여고 졸업 후 좌익에 참여했던 여동생 경원, 고모를 쫒아온 맏딸 설영도 월 북하여 평양에서 재회하였다.
1953(45세) 평양문학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국립고전예술극장 전속작가로 조운과 함께 『조선창극집』 을 출간했다.
1955(47세) 정인택의 미망인 권영희와 재혼.
1956(48세) 남로당 계열로 몰려 숙청당하고 함경도 벽지학교 교장으로 좌천되어 갔다. 『갑오농민전 쟁』을 16부작으로 구상하고 농민전쟁에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하여 정리하기 시작했다.1960(52세) 작가로 복귀하여 「싸우라! 내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를 발표했는데, 이 글은 남한의 4·19소식을 듣고 자신의 아들 딸들의 이름을 직접 부르며 투쟁을 독려한 글이다. 1965(57세) '혁명적 대창작 그루빠'의 계획 아래 『갑오농민전쟁』의 전편에 해당하는 『계명산천은 밝아오느냐』를 발표한다. 안질환 악화로 거의 실명하게 된다.
1975(67세) 고혈압으로 전신불수가 겹친다.
1977(69세) 완전실명과 전신불수의 몸으로 동학혁명을 소재로 한 대하소설 『갑오농민전쟁』제1부를 출간한다.
1980(72세) 『갑오농민전쟁』제2부 출간.
1986(78세) 북한 『조선문학』 7월 호에는 박태원이 고혈압으로 7월 10일 오후 사망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박태원이 구술한 것을 아내 권영희가 정리하여 『갑오농민전쟁』제3부를 출간한다.
▣ 생애와 작품
한편 천변 건너편의 이발소에선 민주사와 젊은 이발사, 이발소 소년, 그리고 몇몇 남자 손님들이 있다. 민주사는 새로 얻어들인 안성집과의 연령차를 생각할 때 자기 머리 위에 가위를 놀리고 있는 젊은 이발사의 생기 어린 얼굴이 유난히 질투난다. 그래도 자신에겐 돈이 있으니까, 위로하려 해도 얼마 안 있어 시작될 부회의원 선거전에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갈 것을 생각하고 더욱 부귀가 탐이 난다. 그런 민주사 얼굴을 행길로 난 창 앞에 앉아 있던 이발소 아이놈이 빤히 쳐다보고 있다.
소년은 이렇게 이발소 창 앞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좋다. 거지들의 둘째 대장인 땅꾼이 어딜 가고 있는지, 다음은 어디로 갈 것인지 소년은 너무나 잘 안다. 느린 걸음으로 점잖게 지나가는 뚱뚱한 중년의 신사는 큰 거리에서 포목점을 경영하는 포목점 주인이다. 매부가 부회의원인 것을 자랑삼아 알고 점잖은 척 걷고 있는 그는 애용하는 중산모를 항상 머리 위에 사뿐 얹어놓은 채 걸어다니는데, 바람이라도 세차게 불어 그것이 머리에서 떨어지길 소년은 적지 않이 명랑한 기대를 가지는 것이다. 소년은 아까부터 천변 너머 맞은 편의 '평화' 카페 앞에서 안을 기웃거리는 오십대의 조그맣고 낡은 부인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관찰한다. 그이는 그 카페의 여급 하나꼬의 어머니인데, 아까 하나꼬가 목욕 간 것을 아는 소년은 드난사는 그가 모처럼 딸을 보러 왔던 것이 허행이 되고 말 것이 애달프다. 한참이 지나서 삼십이 넘은, 그리고 얼굴이나 맵시가 결코 어여쁘지 않은 여급이 나와 제 동무가 목욕 갔음을 알려준다. 이이는 기미꼬로, 무뚝뚝하고, 못생기고, 늙었지만 참말 모르는 말로 여급 중에서도 술을 제일 많이 팔아주는 계집이다. 고개를 조금 돌리니 언제 봐도 의가 좋은 한약국집 젊은 내외가 같이 나오고, 한약국 안에는 주인 영감이 애꾸눈인 시골 손님과 마주 앉아 있다. 그밖에 창 밖을 지나가는 귀돌 어멈, 곰보 미장이의 여동생을 보고, 신전집 작은 아들이 치는 풍금 소리를 들으며 그 집의 기울어 가는 운세를 짐작하여 본다. 이렇게 남의 사정을 딱하게 여기며 창밖에 정신이 팔린 소년에게 젊은 이발사 김 서방이 '인마!'하고 소리를 꽥 지르며 닥달을 한다. 소년은 골이 나서, 볼 멘 소리를 지른다. '내가 왜 인마예요? 내 이름은 어엿하게 재봉이에요'.
그 때 한약국집에는 점원 소년 하나가 새로 들어오는데, 이 소년은 창수다. 막 시골서 상경한 소년의 마음에라도 이곳 천변풍경이 그다지 신기하거나 아름다울 것이 없었지만 오직 이곳이 서울이라는 까닭만으로 아름답고 신기하게 보인다. 하지만 담배 심부름에 거스름돈을 잘못 받아와 주인영감에게 혼나고 담배가게 주인에게 몰린 소년은 서러운 울음이 복받쳐 오른다. 음력 삼월 중순엔 이쁜이의 혼사가 치뤄지는데… 이 경사스런 날, 이쁜이에게 마음이 있던 점룡이는 어디론지 휙 나가버리고, 이쁜이 어머니는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부디 혼자 애지중지 키워 온 이 딸이 아무 탈없이 잘 살아주기만을 바란다. 한편에서 이렇게 경사가 있었을 때 개천 하나를 건너 신전집은 완전히 가운이 기울어져 서울 살림을 정리하고 시골로 이사를 가고, 한약국집에 새로 고용살이를 시작한 만돌 어멈은 일은 서툴고 남편은 서울 와서도 매질에 계집질이 그치지 않으니 그야말로 불행한 여성이 아닐 수 없다. 한편 민주사는 요사이 부쩍 그 마음이 우울하다. 장난삼아 하던 마작을 못해서인가, 아니면? 그래도 믿었다고 할 수 있는 안성집이 천만 뜻밖에도 어떤 젊은 학생 놈하고 좋아지내는 것을 눈으로 목격했던 것이다. 경성부 회의원 선거로 다사(多事)한 민주사는 분망한 하루 가운데 안성집 일을 잊었다가도 문득 뜻하지 않게 떠오르는 생각에 우울하게도 계집일이 궁금하였다.
빨래터에는 항상 동네 아낙들이 주고받는 여러 소문들이 있다. 만돌 아버지가 관철동에 첩이 하나 생겼다더니, 결혼한지 한 달밖에 안된 이쁜이 서방도 관철동에 있는 어느 식당 기집년에 미쳐 죽자 사자 한단다. 점룡이 어머니 말에, 이를테면 첩들은 모두 관철동에다 살림시키기가 유행인가 보다. 신랑은 외입하느라 구박이 심하고, 시어미라는 건 이쁜이를 종처럼 부려먹기에 바빠 친정 나들이 한번 안 시키니, 이쁜이하고 이쁜이 어머니의 타고난 팔자는 어찌 그리 기구한지 모른다. 평소에 소란하던 빨래터도 이쁜이 소식에 방망이 소리 하나 들리는 일 없이 얼마 동안은 입들을 봉하여 애닯게 조용하다. 눈을 들어보니, 한약국집 젊은 부부는 언제나 다름없이 의도 좋게 동부인하여 어디로 간다. 점룡 어머니는 그들을 보고 저도 모르게 가만한 한숨을 토하였다.
서울 온지 이제 달 반이 되어 가는 창수는 자정이나 되어 돌아오도록 영화구경에 폭 빠졌다. 하라는 일은 안하고 놀러만 다닌다고 혼이 나고서도 저러는 창수를 재봉이가 보고 있다. 천변으로 향한 평화 카페 창으로는 은방 젊은 주인의 옆 열굴이 흘낏 보인다. 그는 요사이 하나꼬에 빠져 있다. 하지만 얼굴도 곱고, 마음도 곱고, 행실도 곱다고 소문난 하나꼬가 거기에 응할 리 없다고 재봉이는 코웃음조차 치는 것이다. 평화 카페에는 대여섯 패의 손님들이 있어, 제법 활기 있어 보이는데, 아까 그 종로 은방 주인, 게다가 새로 나타난 최진사의 아들 '사이상' 역시 하나꼬에게 반해 있다. 삼호 박스의 대머리 손님, 손주사는 그날 아침 마누라를 잃고 이렇게 술에 취해 주정 중이다. 육호 테이블엔 결코 이런 데서 돈을 쓸만큼 유복해 보이지 않는 젊은 아이들 셋이 술을 마시는데 가만 보니 그 중 하나는 이쁜이 서방 강석주가 틀림없다. 그는 새로 곰보 미장이 동생인 정옥이라는 여자에게 관심을 갖는 중이다. 세 젊은이가 밖으로 나왔을 때 큰 길거리에서는 아이스크림 장수인 점룡이와 용돌이가 그들을 가리키며 '흥' 코웃음을 쳤다. 부회의원 선거는 끝났는데 기어이는 포목전 주인의 매부가 다시 당선되어 그의 위세만 더욱 당당해지고, 민주사는 그간의 피로와 마음씀에 지쳐 앓아 눕는다. 민주사는 '용단'을 내려 안성집을 내보낼 '결단'을 한번 가져보지만 그러나 계집은 민주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여우여서, 마침내 민주사가 계집을 찾아갔을 때는 계집에게 속으러 간 것이었다.
창수는 아침 여섯 점(시)에 일어나 한약국 일하고 마당을 쓸고 하여도 툭 하면 게으르다느니, 꾀를 피느니, 버르장머리가 없느니 하는 주인영감 때문에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겨우 사 원 받구 이 노릇을 하느니, 삼 원씩 받기는 하지만 일이 고될 것이 없는 평화 카페 보이 녀석이 부럽기두 하고, 제 딴에는 그것말고 동아구락부에 '겜도리'로 들어가도 좋을 것 같다. '다마'를 배울 수 있어서 좋고 돈은 십 환씩이나 벌고. 정신없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까 어느 틈에 나온 이발소 재봉이 녀석이 주인영감 말투를 흉내내어 창수를 약올린다. 하지만 곧 정말 주인영감이 나와 창수는 쫒겨 들어가고 재봉이도 김 서방한테 핀잔을 듣는다. 그러는 재봉이 눈에 한 젊은 여자를 데리고 오는 한 남자의 모양이 보인다. 신전집이 떠난 후 그들이 살던 집에 '하숙옥'이 생겼는데 그 남자는 몇 번인가 하숙집에 드나들어 얼굴이 서투르지 않은 '금전꾼'이다. 하지만 정작 궁금한 것은 그의 뒤를 따라가는 젊은 시골 여자 일이었던 것이다.
미인은 아니지만 면추는 한 여자, 재봉이 눈에 그렇게 보인 이 여자는 '웬 것이 놈의 손에 또 걸려 들었누?'라고 한 김 서방 말대로 서울에 있는 공장에 소개시켜주겠다는 남자의 꼬임에 속아 따라온 불행한 여자였다. 가난한 농가에 태어나 병든 어머니 대신 집안일을 보던 금순이는 열다섯 살 되던 해 치른 혼사에서 신랑이 '큰 뜻'을 품고 야행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 버리고, 두 번째 맞이하였던 신랑은 혼인 당시에 겨우 십삼 세. 너무 어려 시집 온 지 이 년이 되도록 그의 처녀성을 유지하고 있는 불행한 색시는 시름시름 앓던 친정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 또한 적지 않은 빚을 걸머진 채 동생과 함께 어디론지 떠나버려 돌아갈 곳조차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는데, 불행은 이에 그치지 않아 어린 신랑마저 '호열자'에 걸려 십오 세의 나이에 죽고 만다. 호색인 시아버지와 악독한 시어머니 틈에 끼어 그 집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어 무작정 알지 못하는 이 사나이를 따라 서울 땅을 밟기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닷새가 지나도록 깜깜 무소식이고 금순이는 대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무슨 도리가 떠오르지 않는 지금이었다. 그 날 한 여자가 금순이를 찾아왔다.
딸 생각에 눈물 마를 날이 없었던 이쁜이 어머니에게는 시아버지 잠든 틈을 타 갑작스레 딸 이쁜이가 찾아왔다. 다신 안 가겠다는 딸의 말에 격한 마음으로 그러마고 했지만 정신없이 곯아떨어진 딸의 모습을 보며 그래도 보내기는 보내야 할 텐데,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어머니가 저녁이라두 먹여서 보내야겠다 싶어 이쁜이가 좋아하는 청인의 만두를 시키러 나간 사이, 이쁜이는 시집가기 전 모녀 단둘이서 지낼 때 하던 대로 풍로에 뜬솥을 올려놓고 불을 피우고 있다. 내키지 않는 발길로 돌아가는 이쁜이는 어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이제까지 참아온 울음을 그대로 터지어, '어머니, 왜, 왜, 날, 날, 여자루 나놨수?'하며 흐느끼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창자가 끊어지는 듯 하였다.
어제나 그제나 한가지로 바람 한 점 없이 푹푹 찌는 여름 날, 창수는 백통전을 요란스러이 흔들며 돌아오다 호스를 끌고 나와 천변길에 시원하게 물 뿌리는 재봉이를 본다. 신기하고 부러워 한 번 해 보고 싶지만 장난 좋아하는 재봉이가 선선히 물려 줄 까닭이 없다. 화가 난 창수가 무심코 손을 번쩍 들어 본 것이 잘못되어 백통전 하나가 개천 속에 빠져버렸다. 경을 치면 쳤지 재봉이 보는 데서 어디 창피하게 개천 속으로 들어가 그걸 찾느냐고 돌쳐 약국 문을 들어서는 창수였다. 이발소에선 포목점 주인이 앉아 머리를 깎고 있다. 그는 자기 식구들이 모두 원산에 피서가 있는데 자기더러 오라 성화라고 은근히 자랑한다. 그 때 소복 입은 한 여자가 카페문 앞에 서 있는데, 그는 바로 하숙옥에 있던 시골 색시 금순이다. 정확한 재봉이 소식통에 의하면, 여자를 유인해 데려온 남자는 마짱을 하다가 경찰에 붙들려 갔고, 여관집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여자를 기미꼬가 사정을 딱하게 여기고 밥값을 물어주고 함께 있게 되었다는데….
기미꼬는 하숙옥 상노로부터 금순이의 딱한 사정을 듣고 처음엔 아무런 계획도, 성산도 가지고 있지 않은대로 우선 자기의 일터이며 거처하는 곳인 카페로 그를 데리고 왔다. 자기처럼 여급을 만든다거나 그러한 의사가 아니라 하숙방에 그대로 두는 것보다 나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한방에서 숙식한지 사흘째 되는 날 기미꼬는 절묘한 방도를 생각해 내었다. 어디 방을 얻어 가지고 같이 살림을 하여 일체 생활비는 하나꼬하고 자신하고 책임을 맡고 금순이는 집안일을 맡으리라는 것이었다. 금순이나 하나꼬나 믿음직한 기미꼬가 한 말이라 만족하였지만 그들보다 몇 곱절이나 더 명랑한 기대를 가진 것은 기미꼬 자신이었다. 아무의 사랑도 받지 못한 채 살아오던 외로운 여자에게 이제 그런 것은 슬퍼하지 않아도 될 믿고, 의지하고, 깊은 사랑과 따뜻한 정을 나눌 동무들이 생겨난 것이다.
만돌이네는 만돌 아범의 행실 때문에 기어이 한약국집에서 쫓겨나 모교다리 어씨집으로 드난살러 이사가게 된다. 만돌 어멈은 앞길에 아무런 기대를 할 수 없어 이 기회에 단독으로 행동을 취할밖에 도리가 없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낌새를 챈 만돌이는 먼저 가라는 엄마 말을 듣지 않고 치맛자락을 붙들고 놓지 않는다.
때는 푹푹 찌는 여름, 날은 가물대로 가물어 한나절 거리에는 그늘이란 그늘이 없고, 사람들은 먼지만 풀싹거리는 아스팔트 위를 허덕이며 오고 간다. 점룡이의 '아이스크림' 매상고는 더위 때문에 내내 향상 중이다. 하지만 하늘은 하룻날, 낮부터 찌뿌듯하더니 드디어 여름 장마가 시작되었다. 장마의 피해는 깊숙한 다리 안에 자리잡은 깍정이들의 몸 위에 더 커서 갑자기 불은 개천 물에 집이며, 아끼던 물건 넣어 놓은 궤짝이며 다 잠기고 말았다. 날이 개자 사람들이 천변가에 몰려 나와 불어난 개천물에 떠내려오는 물건들을 건져내려고 한판 시합을 벌인다. 장대를 개천 속에 넣어, 물건을 제 앞으로 낚아 당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어서, 장대를 들고 뛰는 것은 '선수'나 하는 일이다. 그 구역에서 한번 놓쳐 버리면, 다른 구역에는 또 그곳의 '선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일개 스포츠처럼 신나고 구경할 만한 것이었다.
저녁 때, 비가 잠깐 개이고 햇볕조차 보일 무렵 재봉이가 앉아 있던 이발소 창밖에 와서 선 한약국집 창수는 재봉이더러 야시에 가자 한다. 김 서방 때문에 재봉은 갈 수 없다. 이튿날 찾아온 창수는 어쩐 일인지 학생모를 반듯이 쓰고 일전에 고물상에서 샀다던 큰 학생 가방을 들고 서있다. 밤낮 내쫒긴다거니 아주 그만둔다거니 하더니만 그예 이렇게 되고 말았구나 싶은데 딴 때완 달리 말이 잘 나오지 않는 재봉이다. 창수는 재봉을 데리고 빙수가게로 들어가 빙수 두 그릇을 사준다. 어제 혼자 야시에 가선 새 셔츠며, 십오 전짜리 금시계줄이며, 동그란 색경하고, 만년필까지 사서 동무들 앞에 자랑이다. 창수는 정말로 아예 집에 내려가는 길이다. 하지만 인제 쉬이 또 오리라고 장담하는 것이다. 재봉이더러 너도 바보같이 굽실거리지만 말라고, 이발소에게 붙어있지 않으면 있을 데가 없냐고, 코웃음조차 치는 품이 올 봄이나 그렇게 비로소 서울 구경을 한 소년 같지가 않다. 가방을 열어 계피를 한 줌 꺼내어 나눠 먹으라고 줄 때 보니, 가방 안에는 몇 가지 값나가는 건재가 들었다. 창수는 서울에 올라온 지 반년이 채 못 되어, 그렇게도 어리고 또 순진하던 열네 살짜리 소년이었던 것이 이미 이만큼이나 자라고, 또 '영리'하여진 것이다.
비는 그대로 매일같이 줄기차게 내리고, 이발소에는 젊은 이발사 김 서방이 연애하러 다니기에 바쁘단 소문에 모두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다. 그를 미워하는 재봉이는 쌤통이라 생각하며 빈정거린다. 이발하러 온 포목점 주인의 중산모를 솔질하던 재봉이는 이놈이 한 번 땅에가 떨어지길, 그것두 진창에가 툭 떨어지면 아주 멋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재봉이 말마따나 마작 때문에 유치장에 끌려가 사주일을 지내고 석방되어 나오는 중인 그 '금전꾼'은 일껏 순조롭게 진행되려던 일이 틀어지고 만 것이 무던히도 쓰렸다. 새삼스럽게 시골 여자 얼굴을 눈에 그려보고 그 거래도 돈이나 흠뻑 받구 팔아먹어야겠다고 다짐하는 것이지만 대체 그 동안 여자는 하숙에가 그대로 붙어 있을 것인가가 문제였다. 그 이튿날 같은 시각에 저녁을 먹던 기미꼬는 낯선 손님의 방문을 맞는다. 얘기하는 품이 심상치가 않은데 남자는 분명코 '시비'조로 말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이 자가 바로 금순이를 유인하여 왔다던 작자이다. 기미꼬는 싱긋 한번 웃어 보이고 태연한 얼굴로 남자보다 자기가 먼저 자리잡고 앉았다. 그래봤자 여자라고 얕보았던 상대는 기미꼬에게 한판 당하고 그대로 물러나고 말았다. 이 사건의 전말은 또 즉시 재봉이의 선전으로 며칠 동안 이발소 안에서 주요한 화제가 되었다. 그로부터 나흘 뒤, 그들은 종로은방의 젊은 주인이 '금밀수'를 하다 발각되어 검거되어 갔다는 새로운 뉴스를 듣는다. 하나꼬가 그것을 남의 일과 같이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은, 그가 이를테면 자기의 환심을 사려, 자동차에 다친 아버지의 치료비라도 보태 쓰라고 준, 일금 오십 원의 돈을 받아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사이 더욱 맹렬히 자신을 찾아오는 무교정 '사이상'의 열정에 차츰 마음이 기울어 가는 하나꼬였다.
지리했던 장마는 마침내 끝나 김 첨지는 용돌이와 칠성 아범을 데리고 빨래터를 정리하고, 개천 속에는 부청에서 나온 인부들 서너 명이 개천을 치우고 있다. 그 중 하나 만돌 아범은 모래를 긁어 올리던 끝에 희끗 하여 보니 오전 백통화가 분명하였다. 이것은 한약국집에 심부름하던 창수란 녀석이 개천에 떨어뜨리고 꾸중을 받았던 그 돈일지도 모르는데 그러한 것은 아무렇든 만돌 아범은 이 돈 오전이 행복이나 약속하듯이 신나게 고무래를 놀리는 것이다. 그러나 참말 행복은 지금 이 동리에선 한약국집 며느리에게밖에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의 유일한 걱정은 아이를 못 가지는 것이었는데 이제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게 애를 밴 것이다. 길에서 만돌 어멈을 만난 여자는 자기의 행복을 새삼 강렬하게 느끼는 것이다. 같은 시각 하나꼬는 아무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자신을 행복한 사람으로 느꼈다. 결혼은 하였으나 아내와 갈라섰다는 사이상이 자신에게 정식으로 청혼한 것이다.
관철동집은 우리의 착한 민 주사를 영락없이 속여가며 자기 애인인 학생과 함께 온양 온천으로 가서 즐기기에 바쁘다. 하지만 젊은 학생도 관철동집을 속이고 좀더 젊고 아리따운 학생과 월미도에 가서 서로 희롱한다는 것을 그는 꿈에도 알아 내지 못하였다. 민 주사도 그보다 젊은 취옥이를 데리고 놀기에 빠져 그런 줄은 알지도 못하기 일반이었다. 어느 일요일날, 오류장으로 소풍 나간 자리에서 공교롭게도 그 괘씸한 전문학생을 딱 마주친다. 민 주사는 젊고 예쁜 기생을 데리고, 학생은 다른 여학생을 데리고, 그렇게 마주하여 서로 뒤가 꿀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나꼬는 은방 젊은 주인에게 받은 오십 원이 영 마음에 걸리고 사이상은 끈질기게 와서 청혼하는데, 정작 사이상, 즉 최진국이의 집안에선 이제 집안에 들어올 여자가 천한 여급이라 해서 일제히 반대할 것에 일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오직 자기 사랑에 충실하려는 젊은이는 집안 사람들의 반대 의사에 완강하게 버티었고, 아들을 무던히나 귀애하는 늙은 아버지는 아들의 정인이래서 자기도 사랑을 가져 대할 마음의 준비를 가졌다. 이런 전말을 남자는 일일이 보고하고 하나꼬의 마음을 획득하고 싶어 애썼으나 그는 우선 먼저 아내와 법률적으로도 갈라설 것을 주장하여 영리하게도 정실이 될 것을 꿈꾸었다.
금순이는 이제 서울에서의 살림살이가 제법 익숙하였다. 기미꼬와 하나꼬는 직업이 직업이라 아침이면 늦잠을 자는 것이었으나 금순이만은 시골 색시답게 언제든 일찌거니 자리를 떴다. 눈을 뜨면 물을 떠다 놓고 장을 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였고 세탁과 재봉 또한 그의 중요한 임무였다. 별로 한가한 시간이 있을 턱이 없었으나 자기가 그들을 위하여 그만큼이나 봉사하여 줄 수 있다는 것에서 금순이는 도리어 기쁨을 얻었다. 근래에 하나꼬의 결혼문제가 생겨 그것 또한 금순이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었지만 기미꼬만은 그것을 좋게 생각 안 하는 것이 걱정이었다. 그러나 생활이 안정된 즈음에 이르러 지금은 행방조차 알 길 없는 아버지와 어린 오라비 순동이 일이 궁금하였다. 하지만 자신은 고향을 떠났고 서울과 사이에는 엄청나게 먼 거리가 있어 평생 만나지 못할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만나려 들면 또 우습게도 쉬운 것이어서 참말 뜻밖에도 하나꼬의 혼수를 알아보러 간 백화점 문간에서 마침 연초 소매부에서 담배를 사 가지고 나가던 소년, 순동이를 마주하였다. 서로 사랑하는 이, 그렇게도 그립고 보고 싶어하던 이의 얼굴을 서로 머엉하니 마주 보다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 참고 문헌과 유용한 사이트
▣ 글쓴이 김지영
서강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석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는 「조선 후기 傳의 논평 양식 연구」가 있다.
E-mail: lilyjy@hanmail.net
사람들은 좋은 날을 핑계로 여러 패나 저희끼리 맞추어 점심들을 싸들고 일찍부터 산으로 들로 나갔다. 한약국집 젊은 내외도 임신 삼사 개월이나 되었는데도 인천으로 놀러가고, 평화 카페 여급들도 놀기 좋아하는 젊은이들과 한강으로 '보트'를 타러 갔다. 언젠가 상처했다고 카페 와서 울던 손주사도 딸을 데리고 놀러 나가는 중이다. 민 주사는 취옥이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나, 요샌 관철동집 강짜를 얼버무리느라 다이아 박은 백금반지에 치마와 저고리감까지 끊어주고도 아주 골치를 앓는다. 이 날 민주사는 취옥이에게 들은 대로 관철동 집을 데리고 춘향전을 보러 단성사에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심심하여 못 견디겠는 재봉이는 그렇다치고 김 서방은 그의 애인을 만나러 나간 판이다. 그 때 한약국집 주인 영감은 근래에 없이 자기 집 안방에게 앉아 술상을 받고 있었다.
금순이 오라비 순동이는 '한양구락부'라는 다마 치는 집에서 '겜도리'를 하고 있었다. 같이 한집에 있는 그와 한 또래의 겜도리가 소년이 두 명, 소녀가 두 명, 도합 다섯 명인데 환경이 좋지 않아 나쁜 물이 든 아이도 있지만 우리 순동이만은 가히 모범소년이라 할까, 천성이 부지런하고 돈 아낄 줄 알아 거기서도 신임이 두터웠다. 더구나 한 달 전에 뜻밖에도 소년 과부가 되어 있는 누나를 만나 갑자기 저의 책임이 더 중하여진 것을 느끼는 순동이었다. 순동이와 금순이의 동기간 정의는 은근하여 외로운 기미꼬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그도 순동이를 친오라비만큼이나 귀애하였다. 새로 장가든 아버지와 새어머니 사이가 험악하여져 단칸방에 함께 기거할 수 없게 된 순동이는 기미꼬의 배려로 그들과 함께 거처하게 된다. 이리하여 금순이 남매와 기미꼬, 세 사람의 살림살이가 또 새로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금순이에게 그지없는 기쁨을 가져다주었지만 아버지에게 계집만 없다면 기미꼬가 아버지랑 살게 되어 온 식구가 한집에 모여 살 수 있을 텐데, 아쉬운 그였다. 금순이 아버지 용 서방은 어쩌다 원치 않게 마누라를 얻어 얼굴은 곱지만 마음도 행실도 곱지 못한 그 덕분에 불행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계집 경영하기의 어려움은 민 주사가 더 해, 홀몸이 아니라는 핑계로 더 큰 집을 사내라는 관철동집 성화에 아주 들볶이는 것이다.
가을도 이미 깊었는데 하나꼬의 시집살이는 말이 아닐 정도로 힘들어서 요사이 그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시집가기 전부터 말이 있었던 것이나 시어머니의 태도는 너무하였다. 근래는 남편조차 밤에 술에 해 늦게 들어오는 일이 잦아지고, 자기에 대한 애정도 엷어진 듯 싶은 것에는 하나꼬도 가끔 시름없이 생각에 잠기고는 그랬다.
점룡이는 요사이 장사도 열심히 안 하고 돈은 어디론가 자꾸 빠지는 모양이다. 주머니에서 웬 계집 사진이 나오는 것을 보고 한바탕 퍼붓고 나온 점룡 어머니는 속으로, '스물 셋'이면 사실 한창 그럴 나이라고, 어여 장가를 들여야겠는데 무슨 재주로 들여 주나 걱정이 한창이다. 오늘 같은 날, 그 '돌다가' 계는 '돌다가' 자기한테 쑥 빠졌으면 좋으련만…. 마침 지나는 수표교 예배당 안에서 풍금소리가 들리는 것에 점룡 어머니는 한달 전부터 예배당에 다니기 시작한 이쁜이 어머니를 생각해 내고 섰는데, 다리 모퉁이에 한 젊은 양복쟁이가 누굴 기다리고 섰는 것을 보고, 자세히 상고하여 보니 이쁜이 서방 강가가 분명하였다. 강 서방이 만나려던 사람은 막 예배를 보고 나온 처녀인 모양인 것으로 보아 강가가 한참 미쳐서 보러 다닌다던 그 관철동 무슨 식당에 있는 계집년은 아닌 듯 싶어 점룡 어머니는 아들과 그 사진 속의 여자에 관한 일도 잊고 어처구니없이 입만 따악 벌리고 있었다.
지난 밤 불길한 꿈을 꾼 하나꼬 어머니는 하나꼬 형편이 걱정되어 기미꼬를 찾아오는 중이다. 꿈은 꿈이라 쳐도 어떻게 딸애 소식이라도 알아보는 수가 없을까하여 기미꼬에게 부탁하러 온 것이다. 꿈이 무어 어떻다고 면박을 주긴 하였지만 기미꼬는 그래도 하나꼬 남편 최가가 한다는 약국엘 들러보겠다고 약속한다. 그로부터 이틀째 되는 날 오후 두 시, 모교다리 모퉁이 청요릿집에는 하나꼬의 어머니와 기미꼬와 금순이가 이제 이곳에 나타날 하나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기미꼬가 약국에 가 하나꼬를 만나게 해 주기를 최가에게 청하였던 것이다. 대체, 양반이 다 뭐구, 행세한다는 게 다 뭐라서, 사돈집에 대해서는 인사를 차리지도 않고 딸조차 마음대로 볼 수도, 아니 소식조차 들을 수도 없는게냐고, 기미꼬는 흥분한 마음에 그리 말하였던 것이다. 최가의 인상을 보아하니 자기가 잘못한 일이나 아닌지 후회가 되었다. 전말을 전해들은 하나꼬의 어머니는 걱정이 안 되는 게 아니었으나 이틀만 있으면 딸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기뻐서 약속시간이 되기 두 시간 전에 벌써 요릿집에 앉아 기다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자 세 사람은 실망과 피로 속에 돌아왔다. 기미꼬와 금순이가 돌아온 집엔 하나꼬의 편지가 도착해 있다. '만나자 하실 때는 편지로 말씀해 주시면'이라는 구절을 보고 기미꼬는 후회와 분노를 느끼며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하나꼬의 남편 최진국은 요사이 취옥이에게 빠져 있었다. 하나꼬는 그렇게 믿었던 남편의 마음이 원래 먼젓번 아내에게서 자기에게로 옮아왔던 것과 같이, 이제는 또 다른 여자에게로 옮아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을 때 놀라움과 슬픔이 컸다. 그 뿐 아니라 아무 죄도 없이 버림받은 전실댁이 이 집에 남겨 놓고 간 두 어린 것도 죽어라 하고 자기를 따르지 않는 것에도 마음이 아팠다. 물론 죄는 굳이 싫다는 것을 애걸하다시피 혼인한 남자에게 있었다. 하지만 정말 사랑하신다면 부인과 갈라서신 다음에 맞아달라던 저는 옳았던가? 오히려 죄는 제게 더 큰 것이라 그런 것을 느끼지 않으면 안되었다.
하나꼬나 이쁜이나, 그러한 여자에 비하면 한약국집 며느리의 시집살이는 어디까지든 평범하였고, 평범한 것은 이를테면 행복을 의미한다. 바람 없고 따뜻한 날, 남향한 대청에는 햇빛도 잘 들고, 그곳에가 시어머니, 며느리, 귀돌 어멈과 할멈이, 각기 자기 일거리를 가지고 앉아 라디오로 주간방송을 듣고 있는 그 풍경은, 말하자면 평화, 그 물건이었다.
오랜만에 손 주사가 기미꼬의 카페에 들른다. 반가이 맞이한 기미꼬는 그가 재혼할 의사가 있음을 전해 듣고 내심으로 금순이를 생각한다. 이제 열아홉인 금순이에게 마흔 둘의 손 주사는 너무 나이차가 있긴 하지만, 어쩌면 나이 지긋이 든 중년신사가 금순이같이 그다지 어여쁘지도 못하고 잘 깨치도 못한 여자를 위하여 줄 것이요, 금순이도 착한 마음으로 전실 아이를 귀애할 것이요, 그럼 서로 행복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만으로도 기미꼬는 제 행복이나 되는 양 기쁨이 가득찼다.
마침내 이쁜이는 서방에게 쫓겨 친정으로 돌아왔다. 외로운 어머니도 이번에는 다시 이쁜이를 그 집에 보내려 하지 않았다. 그는 이튿날로 즉시 딸의 세간을 아주 찾아오고야 말았다. 이쁜이는 시집가기 전에 그랬던 것과 한모양으로 어머니를 도와 밥을 짓고 바느질을 하고 그랬다. 이제는 어머니도 딸로 하여 애를 태우지 않아도 좋았다. 이쁜이가 제 집에 돌아오기 전후하여 점룡이도 허튼 짓 하지 않고 다시 오직 장사에만 마음을 썼다. 이발소의 귀여운 소년 재봉이는 창수가 종로구락부에서 놀고 지내며 달에 십 원씩이나 받는 것도 그다지 유혹을 느끼지 않으며 제법 이발 솜씨도 늘어서 얼마 안 가면 이발사 시험에 어렵지 않게 합격하리란 것은 이발소집 주인의 말이었다.
어느 날, 개천가에서 동네 아이들이 난데없이 웃고 떠드는 소리에 놀라 문을 열고 내다보니 개천 속을 들여다보는 아이들 등 뒤에 포목전 주인이 맨머리 바람으로 같이 아래를 굽어보고 있는 것이 재봉이에게 보였다. 그렇게도 그가 벼르고 기다리던 포목전 주인의 중산모가 끝끝내 바람에 날려 떨어진 것이다. 그 불운한 중산모는 하필 고르고 골라 새벽녘에 얼었다가 살짝 녹은 개천물 속에가 빠졌다. 시꺼먼 똥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깍정이 놈이 얼른 건졌으나, 포목전 주인은 잠시 망설이다 다시 엄숙한 모양으로 그 자리를 떴다. 중산모를 삐뚜름히 쓴 깍정이 녀석은 흥에 겨워 '채플린' 흉내를 내고 사람들은 그 모양을 흥미 있게 지켜보았다.
박태원을 자식처럼 제자처럼 중시하던 이광수의 평이라 다소 감상적이고 단편적인 느낌이긴 하지만, 여기에는 어느정도 박태원의 인물관이 묻어있다.
『천변풍경』은 모두 50절의 에피스드로 이루어져 있으며, 약 30여 명에 이르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 에피소드들이 담고 있는 내용은 당시의 중산층이나 하층민의 생활상이다. 우선, 중산층인 포목전 주인과 민주사의 허위의식과 신전집의 몰락과정을 그림으로써 당시 중산층의 생활상과 평범한 몰락을 묘사하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하층민의 생활상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만돌 어멈이나 이쁜이, 금순이를 등장시켜 남편의 학대와 주색잡기, 조혼의 실패 등으로 고통받는 구시대 여인상을 묘사하고, 기미꼬나 하나꼬와 같은 카페 여급들의 생활과 애정을 비중있게 다룸으로써 도시화된 사회에 새로이 등장한 여성상을 보여주고 있다. 민주사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애욕을 둘러싼 행각은 도시의 퇴폐타락한 삶의 생태를 보여주는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그 외 이쁜이의 남편인 강석주나 하나꼬의 남편이 되는 최진국은 아내를 두고 다른 여성과 끊임없이 애정행각을 벌이는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쁜이, 금순이, 하나꼬 같은 불행한 여인들에 대한 화자의 시각은 매우 따뜻하고 온건하며, 민주사에 대해서는 친밀감으로 희화화하고, 재봉이나 창수에 대해서는 신뢰를 가지고 그들이 '관찰'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작가가 서민들의 삶에 대한 애정을, 우스꽝스런 인물들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인간애를, 때묻지 않은 소년들의 미래에는 밝은 전망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천변풍경』의 공간은 빨래터와 길로 상징되듯이 온갖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며, 장마철에 온갖 것이 물에 휩쓸려 오듯이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쓰레기나 오물, 거지처럼 도시의 어두운 면도 모두 흘러드는 곳이다. 그러나 천변은 그렇게 부정적인 공간은 아니다. 천변은 오히려 가장 보수적이고 고전적인 공간이다. 가장 평범한 보통 사람들, 그것도 전형적인 중인인 서울내기들이 사는 곳이다. 박태원은 도시의 리얼리즘을 그리기 위해 표준적인 조사지역으로 실제 공간인 천변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어두운 밤의 도시는 소란스러움, 슬픔, 눈물로 가득 찬 평화 카페처럼, 극장이 끝난 뒤의 술집처럼 부정적인 곳이기도 하다. 도시의 속물적인 삶은 완고하여 바뀌는 것을 보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곳에 사는 소시민들은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도시화된 삶에 오염되어 간다. 청운의 꿈을 안고 시골에서 상경하였으나 정작 도시의 속물 근성만을 배워간 한약국집 점원, 창수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는 아무 편견 없는 눈으로 이발소 밖의 생활을 관찰하고 소년다운 순진한 마음과 귀여운 유머를 가지고 비평을 하는 재봉이의 시선이 마지막까지 살아 있어 작품 전체가 밝고 긍정적이 된다. 재봉이는 작가 자신과 구별되기 어려운 인물이요, 관찰자이다. 이 작품의 제50절은 마침내 이쁜이가 혹독한 시집살이를 그만두고 친정으로 돌아와 예전처럼 어머니와 아끼며 살게 되었고, 점룡이는 다시 성실한 젊은이로 돌아왔으며, 재봉이는 저보다 나이도 어리고 시골뜨기인 창수가 종로구락부에서 놀고 지내며 십원씩이나 월급을 받는 것도 부러워하지 않고 이발소에 머물러 있으면서 이제 곧 이발사 시험에 어렵지 않게 합격되리라는 긍정적인 기대를 하며 끝을 맺는다.
1. 천변풍경, 첫 번째 이야기(제1절∼10절): 천변 사람들
정이월에 대독 터진다는 말이 있다. 딴은, 간간히 부는 천변 바람이 제법 쌀쌀하기는 하
다. 그래도 이곳, 빨래터에는, 대낮에 볕도 잘 들어, 물 속에 잠근 빨래꾼들의 손도 과히 들 시립지는 않은 모양이다. (본문 중에서)
소년은 그곳에 앉아 바라볼 수 있는 바깥 풍경에, 결코, 권태를 느끼지 않는다…. 그렇게
도 바깥 구경을 좋아한다. (본문 중에서)
재봉이 이발소 소년. 사춘기 소년답게 매우 호기심이 많은 청계천의 소식통. 일하기보다는 이발소 창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고 관찰하는 일에 더 열심이다.창수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한약국집에서 일하게 된 소년. 서울 온지 반년도 채 못되어 도시의 '영리'한 소년이 다 되어 버린다.
금순이 결혼 첫날 밤에 남편이 공부하겠다고 달아나고, 다음에는 지나친 조혼으로 얼마 못 가 신랑이 죽어 두 번이나 결혼에 실패한 불행한 여인. 낯선 사내의 손에 끌려 서울 로 올라오나 사내마저 돌아오지 않고….
기미꼬 평화 카페의 여급으로 나중에 같은 여급 하나꼬와 시골 색시 금순이와 함께 살림을 차리는 인물. 여급같지 않게 얼굴은 못 생기고 성격도 고분고분하진 않으나, 『천변 풍경』에선 유일하게 당찬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점룡이 어머니 빨래터에 자주 나오는 '괴팍스럽고 변덕스러우며 감때 사나운 수다장이'. 빨래터에 모이는 귀돌 어멈, 칠성 어멈, 만돌 어미, 이쁜이 어머니 등과 함께 천변 주민들의 일상사에 참견하는 뉴스메이커다.
이쁜이 어머니 과부의 몸으로 외딸 이쁜이 하나만을 애지중지 길러 강석주에게 시집보내나 불행한 시집살이를 하는 딸 탓에 눈물 마를 날이 없는 불쌍한 어머니다. 민주사 사법서사로 관철동에 첩을 두고 밤마다 색에 빠져 사는 인물. 돈은 많아 경성부회 의원 선거에까지 출마하나 낙선하고, 첩은 또 저대로 즐기느라 바람 잘날 없는데….2. 천변풍경, 두 번째 이야기(제11절∼20절): 가엾은 사람들
얼마동안 계속되는 계인 날씨에, 빨래터는 역시 언제나 한가지로 흥성거렸다. 아낙네들은
그곳에 빨래보다도 오히려 서로 자기네들의 그 독특한 지식을 교환하기 위하여 모여드는 것이나같이…. (본문 중에서)
4. 천변풍경, 네 번째 이야기(제31절∼40절): 꿈꾸는 행복
하나꼬와, 한약국집 며느리와―, 이 두 여성이 각각 자기들의 행복을 꿈꾸고 있었을 때
한편 관철동집은 좀더 실속있게 청춘을 즐겼다. (본문 중에서)
제법 가을답게 하늘이 맑고 또 높다. 더구나 오늘은 시월 들어서 첫 공일….
(본문 중에서)
5. 천변풍경, 다섯 번째 이야기(제41절∼50절): 깨어진 행복과 행복한 기대
"아아니, 글세, 그게 대체 무슨 꿈이야?"
"글쎄요오. 이상두 해라, 하여튼 꿈에 눈이 오시구 그러는 게 좋지 않다지 않어요?" "그래, 그게 숭업다는 게 아니야?"(본문 중에서)
정이월의 청계천변 빨래터에는 마을 아낙들이 모여 빨래를 하면서 수다가 한창이다. 주근깨 투성이 얼굴에 이목구비가 모두 조그마하게 생긴 이쁜이 어머니, 한약국집에서 드난을 사는 귀돌 어멈, 민주사댁 드난살이 얼금뱅이 칠성 어멈, 얼굴이 감때 사나웁게 생긴 점룡이 어머니들이 앉아서 때때로 빨래 흔들던 손을 멈춰가며 사는 얘기, 동네 사람들 근황 얘기를 지절댄다.
신전집은 요새 가세가 기울어 딴집 살림하던 첩을 큰마누라하고 한집 살림을 시키고 있으니 그것 한 가지만 하더라도 알만 하다. 점룡이 어머니는 남의 일이지만 그것 참 안되었다. 점룡이 어머니 수다를 입가에 가만한 웃음을 띤 채 듣다가 빨래를 다 하고 일어서는 이쁜이 어머니를 향해 점룡이 어머니는 은근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이쁜이 혼사는 어떠한지 묻는다. 마침 개천 건너 남쪽 천변으로 기생이 탄 인력거가 호기있게 달려가는 것을 보고 점룡 어머니는 부러움 가득한 얼굴을 해가지고 쳐다본다. 뭐니뭐니 해도 점룡 어머니 생각에는 취옥이라는 이 기생 어머니가 그를 기생으로 집어넣고 아주 호강하는 것이다. 이쁜이만큼 예쁜 딸을 기생에 넣지 않은 것이 점룡 어머니는 안타까울 뿐이다. 그 때 점룡이 녀석은 하라는 일은 하지 않고 모래판에서 윷놀이에 정신이 팔려 있다. 부리나케 한걸음에 달려간 놀음판에선 점룡이가 내리 돈을 따고 있는 판국이다. 점룡 어머니는 기어이 아들 주머니에서 백통전 열 닢을 받아쥔 다음에야 남의 돈은 얼른 갚아야 한다며 그 돈을 가지고 저편으로 건너간다.
▣ 더 재미있게 읽기 위하여
도시 소시민들의 지난한 삶
이광수는 『천변풍경』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거기서, 인류에 대한 강한 연민을 가지고 그네와 함께 울고 있는 한 혼이 우리에
게 보여주는 우리 자신의 가엾은 생활상을 본다. 이상도 신앙도 없는 인생군이 어떻게, 행복에 대한 잘못된 추구에서 저와 및 제 주위의 동포들을 갈사록 불행에 끌어넣고 있나 하는 비극을, 이 『천변풍경』에서 아니 느낄 수 있을까, 아니 느낄 사람이 있을까."카메라 아이와 유리창을 통한 세상읽기
「천변풍경」을 둘러싼 논의들
3. 천변풍경, 세 번째 이야기(제21절∼30절): 장마 풍경
날은 어느 틈엔가 완전히 밝고, 양쪽 천변 길에는 구경 나온 사람이 많았다. 그 사이를 장정들이 기다란 장대를 들고 뛰어오고 뛰어갔다. 장마 때 이 개천에 물이 불으면, 의례 히 구경할 수 있는, 그것은 이를테면 한 개의 스포츠였다. (본문 중에서)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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