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가야 유지 지음
사람과나무사이 / 2025년 3월 / 326쪽 / 19,000원

▣ 저자 이케가야 유지
시즈오카현에서 태어나 도쿄대학교 이과에 입학했다. 이후 동 대학원 약학부에 진학해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학술진흥회 특별 연구원으로 일한 뒤 도쿄대학교 대학원 약학계 연구과 강사와 준교수를 거쳐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그는 뇌 정보통신 융합 연구센터(CiNET) 주임연구원, 일본 약리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해마와 대뇌피질 가변성을 연구하며, 베스트ㆍ스테디셀러 『삶이 흔들릴 때 뇌과학을 읽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63가지 심리실험 - 뇌과학편』, 『단순한 뇌 복잡한 나』, 『교양으로 읽는 뇌』 등 일반인을 위한 뇌과학ㆍ심리학 서적을 다수 집필했다.
▣ 역자 서수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지만 직장생활에서 접한 일본어에 빠져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일본어를 공부해 출판 번역의 길로 들어섰다. 옮긴 책에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63가지 심리실험 - 뇌과학편』,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 『세계사를 바꾼 21인의 위험한 뇌』,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감염병』 등이 있다.
▣ Short Summary
사람과나무사이 출판사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63가지 심리실험 ? 뇌과학편』을 시작으로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심리실험’ 시리즈 여섯 번째 책인 이 책은 시리즈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저명한 뇌과학자인 저자가 뇌과학, 정신의학, 사회심리학, 행동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 세계 최고 권위를 가진 학자들의 흥미롭고도 기상천외한 59가지 심리실험을 통해 뇌과학과 심리학이 구체적인 일상의 삶에서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으로 이어지게 하는지,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지 날카롭게 파헤친다.
‘유유상종’ 원리는 무엇이고, 이런 심리는 언제 어떻게 싹텄을까? 배신으로 생기는 피해 위험성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에게 학대받은 아이가 부모를 더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자연은 어떻게 3,000개의 연어알 중 99.9퍼센트인 2,998개를 정확히 솎아낼까? 사진을 한 장만 보여줄 때보다 한꺼번에 여러 장 보여줄 때 매력도가 높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 시절 독서를 열심히 하면 두뇌 계발에 도움이 될까? 미래 세대에게 안정적으로 자산을 대물림하려면 현재 내 몫의 얼마를 물려줘야 할까?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의 외모 평가보다 자기 외모 평가가 더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AI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등등.
이 책에 소개되는 뇌과학과 심리실험 이야기를 읽어 가다 보면 독자는 자신과 타인, 그리고 개인과 집단의 내면에 숨어 있는 다양한 욕망과 니즈의 실체를 간파하게 될 것이다. 또한 뇌과학이 어떻게 상처받은 사람을 위로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지 깨닫고 나아가 과학을 기반으로 한 심리학이 인간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고 조율하는지 통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차례
저자 서문_ 뇌과학을 연구하는 내가 행복한 과학자인 이유
Chapter 1. 뇌는 어떻게 공감을 불러일으킬까?
Chapter 2. 뇌와 뇌를 결합하면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날까?
Chapter 3.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가 뇌과학적으로 위험한 까닭
Chapter 4. ‘부모에게 학대받은 아이가 부모를 더 사랑한다’는 뇌과학의 역설
Chapter 5. 인간의 뇌는 인공지능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Chapter 6. 인간이 자기 외모에 유난히 너그러운 뇌과학적 이유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59가지 심리실험: 위로와 공감편
이케가야 유지 지음
사람과나무사이 / 2025년 3월 / 326쪽 / 19,000원
Chapter 1. 뇌는 어떻게 공감을 불러일으킬까?
■ 동물은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몸에 이익이 되는 음식을 맛있다고 느낀다는데?! - 미시간대 로사티 교수팀의 ‘맛있는 음식을 선호하는 현상 연구’
요리는 역산(逆算)의 미학이다. 완성된 요리의 이미지가 먼저 존재하고, 거기서부터 역산해서 용의주도한 계획을 세워 한 단계 한 단계 서서히 완성품에 다가간다. 최고로 ‘맛있는 순간’에 음식을 먹으려면 요리의 모든 과정을 신중하게 밟아야만 최적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갓 지은 따끈따끈한 밥에 된장국, 생선구이, 나물 반찬처럼 소박한 상차림조차 한 끼를 차리려면 골치가 지끈지끈한 수의 순서를 동시 병행으로 솜씨 있게 척척 진행해야 한다. 요리란 고도로 복잡한 작업을 거의 반사적으로 처리하는 곡예와 같다.
도대체 왜 사람은 그렇게까지 많은 수고를 들여 요리할까? 사실 요리하는 동물은 사람뿐이다. 자연계에는 신선한 날고기와 생채소가 널려 있다. 자연 식재료에서 영양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야생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동물들이 몸소 증명해 보인다. 이렇게 생각하면 요리는 참으로 기묘한 습관이다.
이 습관에는 식탁을 다채롭게 꾸미는 요리를 바라보기만 해서는 지나치기 쉬운 중요한 이점이 숨어 있다. 미시간대학교 알렉산드라 로사티 교수 연구팀은 침팬지에게 생감자와 삶은 감자를 주고 어느 쪽을 선택하는지 관찰했다. 그러자 원숭이의 89퍼센트가 삶은 감자를 선택했다. 삶은 감자가 좀 더 맛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맛’이란 혀에 음식 등이 닿을 때 느끼는 감각으로, 아미노산과 당을 감지하는 반응이다. 아미노산과 당은 영양소다. 불을 사용해서 재료를 익히면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가열 분해되어 작은 분자로 변화한다. 이렇게 되면 음식의 소화가 촉진되고 위장에서 흡수율이 높아진다. 즉, 음식을 익히면 사용할 수 있는 영양의 양이 증가한다. 익히지 않은 식재료밖에 구할 수 없는 야생 침팬지는 소화가 힘들어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가량을 먹이를 씹는 데 소비한다.
요컨대 ‘영양 만점’이라는 화학 신호는 혀에서 느끼는 ‘맛있다’는 미각 신호가 뇌에 전달된다는 합목적성이 있는 셈이다. 동물들이 ‘맛있는 음식을 선호하는 현상’은 생물학적 이점을 기준으로 그렇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맛있어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몸에 이익이 되는 음식을 맛있다고 느낀다”라고 표현해야 옳다.
이것을 고도로 발달시킨 과정이 ‘요리’다.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피터 루카스 교수는 “사람은 가열된 요리를 먹기에 적합한 구강과 소화기관을 발달시키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현대인은 불에 익히는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요리 기술을 한껏 발휘해 공을 들인 요리와 디저트를 만들었다.
로사티 교수 연구팀은 침팬지에게 오븐처럼 간단한 조리도구를 주었더니 바로 감자를 익혀서 먹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부러 먼 곳에서 생감자를 낑낑대며 가져다 익혀서 먹는 침팬지도 있었다.
요리에는 식재료와 요리의 인과관계를 이해하는 능력, 눈앞의 식재료를 먹지 않고 참는 자제심 등 고도의 인지능력이 필요하다. 침팬지가 이 정도로 요리에 대한 이해력과 기호를 갖추고 있다면, 그리고 가열을 위한 불을 제어하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면 충분히 요리할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는 프로메테우스가 사람에게 불을 전해줬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실제로 사람이 언제 불을 손에 넣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발굴 조사에서 100만 년 전 지층에서 탄화한 식물과 그을린 뼈가 발견되었다. 이는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가 출현하기 전부터 고대 인류가 불을 사용했다는 증거다.
불은 요리뿐 아니라 추위로 언 몸을 녹이고, 어두운 밤을 밝히는 등 용도가 다양하다. 불을 손에 넣은 순간 인류의 생활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불을 엄숙한 성화, 장식용 양초, 불꽃놀이, 탄약 등 더욱 다채로운 목적으로 활용한다. 사람은 식재료뿐 아니라 불마저 ‘요리’하는 생물이다.
■ 자연은 어떻게 3,000개의 연어알 중 99.9퍼센트인 2,998개를 정확히 솎아낼까? - 빅토리아대 데어리몬트 교수팀의 ‘먹이사슬 관점에서 본 사람의 특수성 연구’
연어는 알을 몇 개나 낳을까? 연어 덮밥이나 연어알 덮밥을 먹다 보면 문득 이런 궁금증이 떠오르곤 한다. 연어 알주머니 전체 무게를 한 알 무게로 나누면 어림 짐작할 수 있다. 연어 한 마리는 약 3,000개의 알을 낳는다. 참고로, 청어는 약 3만 개, 명태는 약 30만 개의 알을 낳는다.
사람이 먹는 생선알은 정확히 ‘미수정란’이다. 어류와 양서류의 알은 물속에 방출되어 수컷의 정자와 섞여 체외 수정된다. 말하자면, 사람은 태어나기 전 미숙한 알을, 물고기 배를 가르고 끄집어내 간을 해서 먹는 셈이다. 미수정란은 사람의 혀에 닿으면 톡톡 터지면서 탱글탱글한 식감과 특별한 쾌감을 일으킨다.
연어가 약 3,000개의 알을 낳는다면, 그중에서 무사히 수정되어 알이 부화하고 다시 포식자를 피해 성어가 되어 자손을 남기는 데 성공하는 개체는 몇 마리나 될까? 일반적인 단순 계산으로 동물이 다음 세대에 남기는 자손은 ‘두 마리’ 정도라고 해도 무방하다. 암수가 두 마리의 새끼를 남기면 종의 전체 개체 수가 유지된다. 평균 두 마리 이하이면 그 종은 언젠가 멸종하고, 두 마리 이상이면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서식지와 먹이가 부족해져 결국 멸종한다. 만약 연어알 3,000개 중에서 세 마리가 성어가 된다면, 다음 세대의 개체 수는 1.5배로 늘어난다. 즉, 세대마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바다는 삽시간에 연어 천지가 된다.
3,000개에서 2,998마리를 솎아내는 일은 확률적으로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그러나 자연계는 멋지게 이 기적을 이뤄낸다. 불필요한 개체를 솎아내는 주요 원리는 강자의 포식, 그리고 질병과 부상이다. 야생의 먹이사슬은 경이로운 균형 위에서 성립한다. 연어 치어의 99퍼센트 이상이 포식자의 먹이가 된다. 결국 생물이 새끼를 대량으로 낳는 이유는 자손을 남겨 종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포식자를 영양 면에서 부양하기 위해서다. 즉, 생물은 다른 종을 번영시키기 위해 새끼를 낳는 것이다.
포유류에도 마찬가지 계산을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린은 평생 5~6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그중 절반은 포식자에게 잡아먹힌다. 과거 사람의 출생률은 5~10명이었다. 그런데 근대화가 진행되고, 위생관리와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생존율이 상승해 인구 폭발이 일어났다. 그러자 불가사의한 현상이 나타났다. 자연스럽게 출생률이 떨어졌다. 현재 선진국에서는 출생률이 1~3명이다. 출생률을 스스로 조절하는 현상은 사람만이 가능한 특수성이다.
먹이사슬의 관점에서도 사람은 정말 특수하다. 캐나다 빅토리아대학교 크리스토퍼 데어리몬트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먹이사슬 데이터가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야생에서 대부분 포식자는 어리고 약한 동물을 잡아먹는다. 어리고 미숙한 동물은 경계심이 약하고 신체적으로도 취약해 잡아먹기 쉽다. 그런데 사람은 어린 동물뿐 아니라 다 큰 동물도 먹는다. 생식 적령기에 있는 성체를 죽이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이것이 사람이라는 생물의 특이성이다. 참고로, 사람은 장식품과 가구, 전통 악기 등 포식 이외의 목적으로도 동물을 죽인다. 실험을 마친 연구팀은 “사람은 포식자다”라고 결론 내렸다.
Chapter 2. 뇌와 뇌를 결합하면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날까?
■ 사진을 한 장만 보여줄 때보다 한꺼번에 여러 장 보여줄 때 매력도가 높아지는 경향의 뇌과학적 근거는? - 캘리포니아대 판 오스 교수팀의 ‘치어리더 효과 실험’멋지게 활약한 프로야구 선수의 단독 인터뷰를 봤는데 기대만큼 훈남이 아니었다. 인기 아이돌 그룹의 센터가 솔로 활동에 나섰는데 그룹으로 활동할 때만큼 대박을 터뜨리지 못했다. 미팅 자리에서 마음에 들어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은 뒤 둘이 따로 만났는데 뭔가 실망스러웠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이는 기분 탓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잘 알려진 현상이다. 사람은 개인으로 있을 때보다 집단으로 있을 때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이 현상은 2008년 방영된 미국 인기 TV 코미디 프로그램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How I Met Your Mother)> 시즌 1에서 이름을 따와 ‘치어리더 효과’라 부르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 이름으로 정착되었다. 치어리더 효과가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다. 치어리더의 군무는 시선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데, 치어리더 한 명 한 명을 떼어놓고 보면 평범한 여학생 같다는 내용이다.
치어리더 효과는 왜 생길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은 여럿이 상호 작용하는 집단에 적합하게 설계되어 같이 있을 때 더 활발하고 생기 넘쳐 보인다. ‘집단으로 있을 때 매력적으로 말하고 행동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자동 프로그래밍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이베트 판 오스 교수 연구팀은 이런 주장에 부정적이다. 사진에서도 치어리더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진을 한 장만 볼 때보다 여러 장 늘어놓고 볼 때 매력이 더 부풀려진다. 2015년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네 장의 사진만 제시해도 충분한 치어리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보는 시간’ 가설도 떠올릴 수 있다. 인원수가 많으면 당연히 한 사람 한 사람 음미하는 시간이 짧아진다. 일반적으로 사진 제시 시간이 0.5초보다 짧으면 구석구석 뜯어보며 흠잡을 시간이 없어 결과적으로 그 인물에 대한 평가가 후해진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판 오스 교수 연구팀은 평균 응시 시간이 동일하도록 환경을 조정해 실험을 진행했는데 그래도 치어리더 효과는 사라지지 않았다.
‘은폐’도 사람의 매력을 높이는 효과로 알려진 요소다. 가령 여성이 아름다워 보이는 조건으로 ‘밤, 원거리, 우산’이라는 말이 있다. 어둡고 먼 곳에서 우산을 썼을 때 봐야 가장 아름답다는 것이다. 밤, 원거리, 우산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뇌는 은폐된 부분을 이상형으로 보충해서 상상한다. 그래서 연구팀은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으로 실험했다. 초점이 흐려지기만 해도 얼굴의 매력 점수가 편차치로 10점이나 상승했다. 그러나 집단이 되면 평가 점수가 더 올라가 치어리더 효과는 초점을 흐리는 방법으로도 효과를 발휘했다.
결국 치어리더 효과는 집단을 바라볼 때 우리 뇌가 자동으로 그 평균적인 경향을 산출한다고 설명할 수 있다. 우리 뇌는 사진을 볼 때도 자연스럽게 단체 사진을 보는 경향으로 ‘평균 얼굴’을 산출한다.
평균적인 얼굴은 개인 취향과 무관하게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해 얼굴 사진을 합성할 때도 더 많은 얼굴을 합성할수록 매력도가 높아진다. 즉, ‘집단의 평균 얼굴 점수가 개인의 실제 점수 평균치보다 높아진다.’ 치어리더 효과는 단순한 것 같지만 의외로 심오한 뇌의 고차원적 계산 결과다.
Chapter 3.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가 뇌과학적으로 위험한 까닭
■ 어린 시절 독서를 열심히 하면 두뇌 계발에 도움이 된다고?
-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 페가도 박사팀의 ‘독서 뇌 반응 효과 연구’
“독서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듣는다. 이 주장은 사실일까? 중국에는 “책을 읽지 않으면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라는 옛말이 전해진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도 “책이 없는 방은 영혼이 없는 육체와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책을 읽지 않고도 텔레비전이나 강연회,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오히려 독서보다 효율적이다.
옛날 사람들도 이런 점에 관해 알고 있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독서란 “자기 생각을 남에게 대신 떠맡기는 것”이라며 독서의 가치를 평가 절하하기도 했다. 영국의 정치인 에드먼드 버크는 “사색하지 않고 독서만 하면 먹기만 하고 소화하지 않는 것과 같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작가 윌리엄 서머싯 모옴도 “책을 읽는다고 사람이 현명해지지는 않는다”라고 단언했다. 결국, 독서 자체가 아니라 독서로 얻은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최근 뇌과학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독서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글자를 읽는 도중의 뇌를 검사하면, VWFA가 활동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VWFA는 왼쪽 두정엽과 왼쪽 측두엽 사이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뇌 영역이다. 우리 뇌에는 글자를 처리하는 전문 회로가 갖춰져 있다.
평소에는 의식하지 않지만, 글자 인식은 경이로운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 뇌 활동이다. 1초 동안 평균 10글자를 읽는 빠른 속도로 비슷한 형태의 글자 ‘ㄱ’, ‘ㅋ’, ‘ㄲ’의 차이를 구분한다. 또 ‘앉’과 ‘않’처럼 복잡한 이중 받침이 들어간 단어도 순식간에 식별하고, 글자를 읽을 수 있다. 곰곰이 따져보면 엄청나게 소화하기 어려운 임무다. 이런 식자 훈련을 어린 시절부터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가 뇌 회로에 큰 차이를 일으킨다.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의 필리프 페가도 박사 연구팀이 2014년 11월 <미국 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한 데이터를 보면 알 수 있다. 연구팀은 글자를 보았을 때의 뇌파를 측정해 글자 읽기가 능숙한 사람일수록 글자에 대한 뇌 응답이 강하고 반응 정확도도 높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조사에서는 어린 시절에 읽고 쓰기를 배울 기회가 없어 글자를 거의 읽지 못하는 사람의 뇌도 측정했다. 어려서 글자에 노출될 기회가 적었던 사람의 뇌에서는 최소한의 반응밖에 관찰할 수 없었다. 성인이 된 후 글을 배워 문맹에서 탈출해도 뇌 반응이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독서를 권장하는 이유를 이 실험을 통해 알 수 있다.
연구팀은 더욱 중요한 발견도 했다. 글자 인식이 능숙한 사람은 글자뿐 아니라 얼굴과 일상 도구와 건축물 시각 반응 정확도도 높았다. 그리고 자신이 본 대상이 좌우 대칭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테스트 성적도 우수했다. 글자에는 형상이 비슷한 조합뿐 아니라 ‘本’과 ‘文’처럼 좌우대칭인 글자와 ‘아’와 ‘야’처럼 점 하나 차이로 의미가 달라지는 조합도 있다.
이처럼 미묘한 차이를 깨닫는 능력은 무의식적으로 글자 이외 광범위한 대상 전반에 범용화된다. 글자를 읽는 능력은 ‘독서’라는 틀을 넘어 풍부한 시각 경험의 양식이 된다.
Chapter 4. ‘부모에게 학대받은 아이가 부모를 더 사랑한다’는 뇌과학의 역설
■ ‘부모에게 학대받은 아이가 부모를 더 사랑한다’는 소름 끼치는 뇌과학의 역설은?
- 뉴욕대 설리번 교수팀의 ‘쥐를 이용한 공포 조건화 실험’
교무실에서 선생님한테 눈물 쏙 빠지게 꾸지람을 들으면 교무실에 가는 것 자체가 싫어진다. 카레를 먹고 배탈 나서 고생하면 그다음에는 카레 냄새만 맡아도 속이 울렁거린다. 이처럼 불편한 경험을 꺼리는 학습을 ‘공포 조건화(fear conditioning)’라고 부른다.
공포 조건화는 포유류뿐 아니라 물고기와 벌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범위의 생물에게서 관찰된다. 생명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위기 신호를 피하는 행동은 혹독한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한 중요한 행동 원리다. 종을 초월한 보편적 행동 양식으로 보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기피 현상은 언제부터 생길까? 2015년 1월 미국 뉴욕대학교 레지나 설리번 교수 연구팀은 젖먹이 새끼 쥐에게 공포 조건화 실험을 진행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새끼 쥐에게 생후 2주 동안 페퍼민트향을 맡게 했다. 쥐에게 페퍼민트는 중립적 향기여서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새끼 쥐에게 페퍼민트 냄새를 맡게 하고 전기충격을 주었더니 충격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성체 쥐는 다시는 페퍼민트에 다가가지 않았지만, 새끼 쥐는 다가갔다. 동시에 어미 쥐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경향도 강해졌다.
뜻밖의 결과 같지만, 사실 이 현상에는 심오한 진리가 숨어있다. 새끼 쥐는 어미 쥐의 품에 안겨 안전한 환경에서 자라기에 고생이나 고통을 모른다. 만약 쓰라린 경험을 한다면 당연히 어미 쥐가 준 고통이다. 학대에 해당한다. 연구팀의 실험 결과는 학대당하면 도리어 양육자를 좋아한다는 소름 끼치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 현상은 사람을 포함한 포유류 전반에 설치된 자동 프로그램으로, ‘트라우마 본딩(trauma bonding)’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미취학 아동은 양육자를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부모에게 무조건 호의를 가진다. 설령 학대당해도 어지간해선 부모를 싫어하지 않는다. 심지어 학대한 부모에게 애정을 드러내는 아이도 드물지 않다. 이 효과는 너무나 강렬해 학대당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학대자의 특징(체취 등)에 호감을 느낀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유소년기에 누리지 못한 부모의 사랑을 갈망해서일까? 여기에는 조금 복잡한 심리가 작용한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동경하며 부족한 것을 채우려는 심리가 아니다. 이런 심리는 동물의 진화 과정에서 발달한 본능이다.
포유류 새끼는 무력한 존재다. 양육자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부모에게 미운털이 박히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 그래서 부모에게 사랑받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짜낸다. 새끼 동물이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부모의 흥미를 끌기 위한 전략 중 하나다.
이와 같은 원리가 학대 부모에게도 적용된다. 새끼가 방임 기미를 느끼면 버려지지 않으려고 양육자에게 적극적인 애착을 보이는 전략이다. 이 자동 프로그램이 사람의 뇌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이 생존 전략이 확실히 자연도태 환경에서 효과를 발휘했다는 증거다.
학대하는 부모는 자기 잘못을 깨닫기 어렵다. 이는 아기가 학대 부모를 밀어내기는커녕, 점점 더 강한 애착을 보이는 현상과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 학대당하며 자란 아이는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등 아동기 학대는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생명이 위태로운 최악의 사태를 피한다 해도 학대는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Chapter 5. 인간의 뇌는 인공지능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 미래 세대에게 안정적으로 자산을 대물림하려면 현재 내 몫의 얼마를 물려줘야 할까?
- 하버드대 노왁 교수팀의 ‘미래와 협력 실험’
중학생 시절 잠시 무샤노코지 사네아쓰에게 푹빠져 그의 작품을 많이 읽었다. 특히 친구에게 추천받은 『인생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중에 특히 내 마음속에 강하게 꽂힌 내용이 있다.
사람은 과거를 살았던 누군가의 지식을 흡수하고 무언가를 추가해 후세에 물려줄 의무가 있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나서 비로소 과거에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인류의 흐름 속에서 미래로 가는 가교가 되기 위해 내 인생의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때 시간의 흐름이 마음속에 생겨났다. 이후 나는 맹렬하게 공부하기 시작했다. 기나긴 역사에서 축적된 방대한 지혜를 흡수하려는데 시간과 재능이 부족해 조바심이 났다. 흡수할 수 없으면 후세에 아무것도 남겨주지 못하고 이대로 내 가치가 소멸한다는 생각에 애가 탔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고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한치의 민망함도 없이 사명감을 잘 불태웠구나 싶다. 결국 나는 지금 과학자로서 미래에 이바지하는 일을 사명으로 삼고 있다. 그래도 ‘미래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소망은 불가사의하다. 이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현재의 내게 부족함이 없다면 타인의 행복 따위는 알 바 아니다. 따지고 보면 미래 세대에게 불평을 들을 기회도 없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그런데 사람은 복잡한 생물이다. 내가 죽은 후 인류가 향할 미래를 염려하고 자손의 행복을 바란다.
하버드대학교 마틴 노왁 교수 연구팀은 2014년 《네이처》에 실린 논문 <미래와의 협력(Cooperating with the future)>에서 나름의 해답을 제시했다. ‘협력’하려면 일반적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 자기 의견을 말하는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간은 일방통행이다. 미래의 사람들은 과거에 영향을 줄 수 없다. 이런 일방적인 소통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연구팀은 한 세대 5명의 그룹을 만들고, 다음 세대에 재산을 물려주는 게임으로 간단한 실험을 했다. 자기 세대가 가진 전 재산 100코인에서 각자 원하는 만큼 챙기고 나머지를 다음 세대에 건네준다. 총소비량이 일정 금액 이하면 다음 세대에서 100코인의 자산이 회복된다. 이는 삼림 벌채를 상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허용량 안에서 벌채하면 자연이 알아서 재생한다. 실험 결과, 2~3세대에서 코인이 바닥난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약 70퍼센트의 사람은 다음 세대를 고려해 자기 몫을 줄였으나 ‘내 몫만 챙기면 그만’이라며 욕심을 내는 사람이 일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팀은 협의 시스템을 도입했다. 같은 세대 5명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서 다음 세대에 남길 비율을 결의하는 방법을 제시하자 코인은 동나지 않고 몇 세대에 걸쳐 안정적으로 대물림되었다. 이 상황에서는 약 90퍼센트의 구성원이 개인의 욕심을 자제했다. 즉, 동료들과의 원활한 소통이 자연스럽게 미래에 이바지하는 길로 이어졌다.
매년 새해를 맞이할 때면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연구실 동료들과 ‘왜 과학에 몸 바치게 되었는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다짐한다. ‘미래 지향적 자기희생’이라고 말하면 거창한 느낌이 들지만, 현재 최선을 다하면 과거와 미래의 가교가 된다는 믿음으로 과학에 힘쓰고 있다. 이 마음가짐 덕분에 지금 이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 AI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 구글 인공지능 개발팀의 ‘강화 학습의 심층 학습 응용 연구’
천재의 머릿속은 어떻게 생겼을까? ‘머리가 좋다’는 게 뭘까? 나는 지능이란 ‘추측하고 대처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시험시간에는 최적의 해법을 떠올려 문제를 차근차근 풀고 정답을 적어나간다. 난관에 부딪혔을 때도 적절한 대책을 짜내 타개할 수 있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사람을 보면 무엇때문에 곤란한지 파악해서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대화 중에는 상대방의 기분을 살펴 적절하게 맞장구를 치며 대화를 이어간다. 이런 사람에게서는 지성이 느껴진다. 어떤 상황에서든 예기치 못한 사태를 미리 간파하거나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 적절한 행동을 한다. 한마디로,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행동한다. 따라서 지성이란 추측하고 대처하는 힘이다.
지능은 사람만이 가진 고유한 특성이 아니다. 물고기와 곤충도 지능이라 일컬을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심지어 무생물에도 지능이 존재한다. 인공지능(AI)이 좋은 예다. AI는 컴퓨터 안에 정교한 프로그램을 설치해 사람의 지능 일부를 인공적으로 재현하는 컴퓨터 시스템이다. 1960년대 컴퓨터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전 세계 연구자들의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그 유행은 단숨에 식어 실망 또한 컸다. 사람은커녕 곤충의 발끝에조차 미치지 못할 정도의 지능밖에 구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AI가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2006년에 발표된 심층 학습(deep learning)이 물꼬를 텄다. 심층 학습은 기존에 실패한 인공지능을 몇 중으로 연결해 계층화하는 간단한 원리다. 그런데 예상보다 더 훌륭하게 작동해 사람의 지능에 근접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 계층 구조는 뇌와 같다.
구글이 2015년 3월 《네이처》에 발표한 <심층 Q회로(DQN, Deep Q-Network)>는 특히 큰 충격을 주었다. 아이디어도 단순하다. ‘강화학습’을 뇌가 아닌 ‘심층 학습’에 응용했을 뿐이다. 즉, 심층 학습이 제대로 임무를 수행했을 때 칭찬해주는 방식이다. 사람의 ‘교육’과 같다. 놀랍게도 DQN은 자발적으로 적절하게 행동하고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구글 인공지능 개발팀이 DQN에 인베이더 게임과 블록게임, 3D 레이싱 등 시판 비디오 게임을 반복해서 수행하도록 한 뒤 고득점을 얻으면 칭찬했더니, 전체 49종 중 29종의 게임에서 사람 상급자 수준에까지 도달했다.
구글 인공지능 개발팀이 DQN에 취급 설명서를 주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텔레비전 화면에 표시되는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앞에 있는 컨트롤러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등을 전혀 가르쳐주지 않고, 맨땅에 헤딩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해서 높은 점수를 내면 칭찬하는 과정만 반복했다. 그러자 DQN은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학습하고, 고도의 전략을 구사해 게임을 공략하고, 평범한 사람을 능가하는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이거야말로 관찰하고 대처하는 힘, 즉 지능이다.
DQN 구조를 뜯어봐도 알고리즘 개발자조차 어떤 연산이 이루어지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우리 뇌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뇌 내부를 엿봐도 너무 복잡해 무엇이 어떻게 작동해서 지능이 발휘되는지 파악할 수 없다. 사람의 지능은 자기 지능을 이해할 수 없다. ‘지능’이란 다시 말해 인지를 넘어선 작용이다.
이제 첫머리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었다.
질문: ‘천재’의 머릿속은 어떻게 생겼을까?
답변: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해할 수 없으니 궁금해하지 말자.
인공지능 연구가 초래한 결론은 다소 아쉽지만, 정체를 가늠할 수 없기에 지능은 ‘신비로운’ 능력으로 계속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Chapter 6. 인간이 자기 외모에 유난히 너그러운 뇌과학적 이유
■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의 외모 평가보다 자기 외모 평가가 평균 34퍼센트 높은 뇌과학적 이유는? - 플로리다 임상 및 미용연구센터 네스터 박사팀의 ‘자기 평가 선호도 실험’“왜 텔레비전에 광고를 내보낼까?”라고 물으면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진짜 목적은 이것이 아니다. 돈 내고 광고하는데 이름을 인지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소비자가 지갑을 열어 상품을 사줘야만 광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광고 제작과 방영 비용을 메워줄 매출이 일어나지 않으면 경제학적으로는 광고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다음으로 듣는 대답은 ‘구매 욕구’를 자극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실제로 광고를 보고 갖고 싶다고 직접 자극받는 사례는 의외로 매우 적다. 왜냐하면 광고를 진지하게 보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사실 광고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 접촉 현상에 있다. ‘친숙한 대상에 안도감을 느낀다’는 무의식적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트 선반에 품질과 가격이 같은 상품 A와 B가 진열되어 있을 때 다수의 소비자는 듣도 보도 못한 상품 B보다 광고에서 몇 번 접한 상품 A(또는 브랜드)를 선택한다.
눈에 익은 대상에 호감을 느끼는 경향은 동물의 기나긴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본능이다. 예전에 본 적 있는 대상은 나에게 파괴적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낮다. 왜냐하면 내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나를 잡아먹거나 살해할 법한 상대라면 지난번에 만났을 때 나는 이미 피해자가 되었을 것이다. 아무런 피해 없이 무사했고 별 탈 없었기에 지금 내가 멀쩡하게 살아 있다. 그러니 안전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반복해서 접한 대상을 낯선 대상보다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본능은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광고는 진화론적으로 보증된 이 심리를 이용한 마케팅 수단이다.
단순 접촉 현상은 우리 일상의 다양한 상황에서 볼 수 있다. 가령 가족과 지인에게는 생판 모르는 남보다 친근감을 느낀다. 또 ‘정붙이고 살면 고향’이라는 말처럼 연고가 없는 곳도 살다 보면 차츰 정이 들고 애착심이 생긴다.
그런데 나에게 가장 익숙한 대상은 바로 내 얼굴이다. 매일 아침 세면대 거울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정도로 자주 만나면 단순 접촉 현상으로 자기 외모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자기 얼굴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도 수두룩하다”라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핵심은 내가 내 얼굴에 내리는 ‘주관적 평가’와 남이 내 얼굴에 내리는 ‘객관적 평가’에 차이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미국 플로리다 임상 및 미용연구센터의 네스터 박사 연구팀은 이에 대해 연구했다. 연구팀은 67명의 참가자에게 얼굴 사진을 차례차례 보여준 뒤 점수를 매겨달라고 요청했다. 사진에는 참가자 본인의 얼굴도 섞여 있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다른 사람이 매긴 평가보다 자기 평가가 평균 34퍼센트 높았다. 자기 외모를 현실보다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증명된 셈이다.
이 연구 결과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젊은 사람일수록 자기 평가가 높다는 사실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자기 얼굴에 익숙해져 단순 접촉 현상이 강화될 것 같은데, 반대로 자기평가가 실제 자신에 가깝게 축소되었다. 너 자신을 알라…. ‘어른이 된다’는 건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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